게시날자 : 2020-01-12

주체109(2020) 년 1월 12일 [상식]

 

만월대

 

고려때의 왕궁터인 만월대는 개성시 송악동에 자리잡고있다.

만월대의 왕궁은 강화도에 도읍을 일시 옮겼던 40여년간(13세기 중엽)을 제외하고는 고려왕조의 기본왕궁이였다.

만월대의 고려왕궁은 왕의 궁전들이 있던 궁성과 중앙관청들이 있던 황성으로 나뉘여지는데 고려왕궁의 면적은 125만㎡에 달했고 궁성의 면적은 약 39만㎡였다.

왕궁의 동, 서, 남쪽벽은 발어참성(896-898년 개성시 송악동일대에 쌓아진 성)의 성벽을 그대로 쓰고 왕궁의 북쪽성벽만 만월대의 북쪽언덕을 따라 새로 쌓았다.

황성의 정문인 광화문은 동쪽에 있고 북쪽에 태화문과 장추문, 서쪽에 영추문, 남쪽에 주작문 등과 그밖에 여러개의 작은 문들이 있었다.

궁성의 정문은 남쪽에 있는 승평문이였다.

궁성에는 서쪽에 서화문, 동쪽에 동화문, 북쪽에 현무문 등과 그밖에 작은 문들도 있었다.

동화문은 궁성과 잇닿아있는 태자궁인 동궁으로 통하는 문이였다.

광화문으로 들어가 북쪽으로 돌아 승평문안에 들어서면 그 좌우에 동락정이라고 부르는 루정이 있었다.

승평문과 그 북쪽에 있는 신봉문사이에는 구정이라고 불리우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이 마당 한복판으로는 광명천이라는 개울이 흐르고 거기에는 돌다리가 놓여있었다.

신봉문은 2층으로 된 화려한 문이였다.

이 문루에서 왕을 비롯한 관리들이 구정에서 진행하는 격구, 팔관회 등을 보았으며 군사를 사열하기도 하였다.

앞면 7간, 옆면 4간이며 3개의 문길이 있는 신봉문터에는 지금도 기단과 주추돌이 남아있다.

신봉문터의 동쪽에는 동궁으로 드나드는 건춘문이 있었고 서쪽에는 내전으로 통하는 태초문이 있었다.

신봉문터의 북쪽에는 창합문터가 있는데 여기를 지나면 4개의 웅장한 돌계단이 있는 높은 축대가 있다.

돌계단은 33단으로 되여있는데 경사가 급하여 높이 솟아있는듯 하다.

계단을 올라 회경전 전문터를 지나면 회경전 본전터가 있고 회경전뒤에는 장화전, 원덕전, 장령전 등 큰 궁전의 터들이 련이어 있다.

축대우에 높이 솟은 중심건축군의 서쪽에는 건덕전터, 내전터를 비롯한 궁전터들이 잘 남아있다.

만월대건축에 쓰인 돌들은 거의 모두가 정교하게 다듬어진것들로서 실로 그 매개 돌마다에서는 고려사람들의 뛰여난 예술적재능과 창조정신을 엿볼수 있다.

만월대유적에서 찾아볼수 있는 우수한 건축술에는 고려인민들의 생활적 및 미적요구와 지향, 재능과 경험이 깃들어있다.

만월대는 크고작은 여러개의 건축군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송악산을 배경으로 하고있으며 남쪽으로 뻗어내린 완만한 자연기복을 리용하여 몇개의 구성축을 형성하고 배치되여있다.

그것은 서로 평행으로 설정되여있는것이 아니라 축의 머리는 다같이 북쪽에 두고 남쪽으로 향한 릉선과 골짜기를 따라 좁아지거나 벌어지면서 형성되여있다.

이것은 평면상 구성축설정에서 도식을 피하고 지형지물을 효과있게 리용한 창조적기풍의 발현이다.

보는바와 같이 만월대유적은 고려시기 우리 인민의 창조적재능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만월대의 왕궁중심부분복원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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