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11-21

주체110(2021)년 11월 21일 《상식》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진 조선씨름

 

우리 민족의 슬기와 지혜는 전통적인 민족체육종목인 씨름에도 깃들어있다.

씨름은 두 사람이 다리에 낀 샅바나 허리에 맨 띠를 서로 잡고 넘어뜨리기를 겨루는 우리 나라 민족체육의 하나이다.

씨름이란 말은 우리 인민의 오랜 언어생활속에서 전하여오는 《싱갱이질》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힐흠》에서 유래되였다.

이 말이 오랜 세월을 내려오는 과정에 점차 발음이 변하여 《씨름》으로 고착되였다고 한다.

삼국시기에 씨름이 전국에 널리 일반화되였으며 씨름을 잘하는 사람들을 《력사》라고 하였다.

고구려의 씨름무덤과 장천제1호무덤의 벽화에는 고구려씨름의 경기장면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이 벽화들에서 맨몸에 짧은 바지를 입은 두 씨름군은 서로가 상대방의 샅바를 단단히 틀어잡고 힘을 겨루고있다.

씨름무덤벽화에는 백발의 한 늙은이가 지팽이를 짚고서서 경기과정을 주시하면서 심판을 서고있는 모습도 그려져있다.

이 그림을 통하여 당시에 벌써 씨름이 엄격한 경기규칙과 규정에 따라 질서있게 진행된 민족체육경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것은 장천제1호무덤벽화에 그려져있는 용을 쓰는 씨름군의 형상인데 여기서 씨름군이 상대방의 두다리짬사이에 다리를 끼워넣고 넘어뜨리기를 시도하고있는 수법은 오늘의 씨름에서 말하는 안걸이수법이다.

씨름은 군인들은 물론 각계층 사람들속에서도 생산활동의 여가와 민속명절들을 계기로 자주 진행되였다.

특히 평양에서는 추석을 비롯한 민속명절날들에 모란봉의 영명사뜰과 외성남문밖에서 씨름경기가 대성황을 이루고 진행되군 하였다.

조선씨름은 벽화와 기록자료들을 통하여 볼 때 동방씨름의 시초를 이루었다고 할수 있다.

중국에서는 조선씨름을 고려기, 료교라고 하였으며 일본씨름도 삼국시기 고구려의 영향으로 시작된것이였다.

이처럼 조선씨름은 이미 삼국시기에 자기의 완전한 체모를 갖추었고 그 이후시기에 널리 보급되면서 변함없이 계승되였다.

오랜 력사와 전통을 가지고있고 슬기롭고 용맹한 우리 인민의 우수한 민족성이 그대로 반영되여있는 조선씨름은 오늘 민족문화전통을 적극 살려나가는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더욱 개화발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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