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5-10

주체111(2022)년 5월 10일 《소개》

 

최무선과 화약무기

 

최무선은 고려시기의 발명가이며 왜구격멸에서 공을 세운 무관이다.

최무선은 14세기 후반기 고려에 끊임없이 기여들어 로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격멸하는데서 가장 위력한 무기는 화약무기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집에 실험실을 차려놓고 화약의 기본원료인 염초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으며 그에 기초하여 화약무기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배에 설치하는 새로운 방법까지 고안하였다.

그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적인 사업으로 화약무기를 대량생산할것을 적극 제기하였다.

봉건정부는 그의 제기를 받아들여 1377년 10월에 화약 및 화약무기생산을 주관하는 관청인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최무선을 제주로 임명하였다.

그의 주관하에 화통도감에서는 대장군포, 1장군포, 2장군포, 3장군포, 륙화석포, 화포, 신포, 질려포 등 각이한 포들과 화전, 철령전, 피령전, 철탄자, 류화, 주화 등 여러가지 불화살과 포탄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낡은 형태의 포들을 개조하는 사업도 힘있게 벌리여 포탄들을 종전보다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쏘아보낼수 있게 하였다.

최무선은 화약무기들을 배우에서 합리적으로 사용할수 있도록 종래의 싸움배들의 구조를 개조하였다. 화포를 쏠 때에 배가 흔들리지 않게 하는 방법과 습기로부터 화약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방법도 창안하였다.

그의 이러한 창안들로 하여 고려의 싸움배들에서 쏘는 포탄의 명중률은 매우 높았다.

1380년 8월 수만명의 왜구가 500여척의 대함대를 몰고 전라도 진포(금강하구)에 침입하자 최무선은 부원수로서 100척으로 무어진 고려함대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다. 그의 지휘밑에 고려군사들은 화포로써 불벼락을 들씌워 적선 500여척을 몽땅 불태워버리는 커다란 승리를 거두었다.

 

진포해전을 형상한 그림

 

그후에도 화약무기로 장비된 고려함대는 1382년 곤양(사천)앞바다싸움과 1383년 박두양(경상남도 남해군 앞바다)바다싸움에서 그 위력을 떨치였다.

화약무기의 된맛을 보게 된 왜구들은 그전처럼 제멋대로 고려에 기여들지 못하였다.

이처럼 화약무기를 함선에 설치하여 바다싸움에 활용한것은 세계에서 고려가 처음이였다.

최무선은 화약제조법을 기록한 책을 아들 최해산에게 넘겨주었는데 최해산도 화약제조법을 더욱 연구발전시키고 수많은 화약무기들을 만들었다.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