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9-10-26

주체108(2019) 년 10월 26일 《기사》

 

안중근의 이또처단은 정의의 애국적거사(1)

 

1909년 10월 26일 할빈역두에서 단행한 안중근의 이또 히로부미처단은 조선에 대한 침략정책을 감행하던 일제에 대한 조선인민의 단호한 징벌이였고 조선사람은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민족이며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기상을 가진 인민이라는것을 과시한 애국적소행이였다.

안중근은 단신으로 이또를 처단하였지만 그가 멸적의 총탄을 날린것은 조선민족의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고 일제의 조선침략에 대한 항거의 선언이였다.

안중근이 이또를 처단한것은 일제의 식민지노예로 살지 않으며 빼앗긴 나라를 기어이 되찾고말겠다는 조선인민의 굳은 의지의 발현이였다.

날로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건져보려는 일념밑에 안중근은 애국문화계몽운동과 국채보상운동에도 뛰여들었으며 의병투쟁에도 나섰다.

그는 자기의 모든 활동을 개인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권회복이라는 애국자의 립장에서 보고 대하였다. 이러한 민족적자각과 반일의지를 지녔기에 안중근은 이또를 처단한 후 현장에서 《조선 만세!》를 거듭 웨치면서 일제의 식민지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조선인민의 신념을 세상에 시위하였던것이다.

안중근의 이또처단은 단순한 반일감정의 충동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의 한 형태인 의병투쟁에서 단행된것이였으며 의병대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의병대의 의무를 수행한것이였다.

그의 거사는 국권을 되찾으려는 조선인민의 의지와 신념의 발현이였지 결코 개인테로가 아니였다. 따라서 그를 일제법정에서 재판할것이 아니라 응당 국제법에 따라 전쟁포로로 대하여야 할것이였다. 때문에 그는 일제관동도독부 지방법원에서 취급된 제1차 공판시 《나는 이전부터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이번 거사를 계획하였다. 따라서 이 법원의 공판정에서 취조당하는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자기의 거사가 이또에 대한 개인적복수감정에 기인된 테로가 아니라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항의하여 전쟁을 선포한 전투행동이였음을 명백히 밝히였던것이다.

안중근은 또한 국권회복을 위한 자기의 심정에 대하여 면회온 동생들에게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 나라의 회복을 위하여 힘쓸것이다.… 또 조선독립의 만세소리가 천국에 들여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것이다.》고 하면서 죽어서도 기어이 이루어야 할 나라의 독립을 열렬히 소원하였다.

 

동생들과 마지막면회를 하는 안중근렬사

 

안중근의 이또처단은 동양평화를 바라며 다른 민족에 대한 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여 나선 조선인민의 정당한 투쟁의 일환이기도 하였다.

일제의 조선침략이 동양평화에도 심각한 위기를 몰아온다고 본 안중근은 그것을 막는 길은 오직 일제의 침략정책과 그 실행을 저지시키는데 있다고 인식하고있었다.

그는 1907년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의병을 일으키기 위한 모임을 가진 자리에서 동료들에게 《우리 민족이 만일 이 도적놈(이또)을 죽이지 않는다면 조선은 반드시 없어지고야말것이며 동양도 역시 망할것이다.》고 하면서 동양평화는 일제의 해외침략을 저지시키는데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형을 앞둔 시각에도 《내가 조선독립을 위해 죽으며 동양평화를 위하여 죽으니 죽음에 무슨 한이 있겠는가.》하면서 자기투쟁의 정당성에 대하여 굳게 확신하였다. 특히 그는 동양평화를 조선독립문제와 결부시키고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지배를 그대로 두고서는 이 문제를 론할수 없다고 보면서 《조선이 독립되여야 동양의 평화를 지킬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안중근이 조선독립을 우선시하고 동양평화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있었다는것을 말해준다.

안중근의 이또처단은 나라의 자주권과 독립을 위한 정의의 애국적인 소행이였으며 일제의 대륙침략책동이 한층 강화되고있던 시기 식민지통치를 강요당한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 단행한 거사인것으로 하여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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