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4-08

주체110(2021)년 4월 8일 《기사》

 

천리마시대 《평양속도》창조의 나날을 더듬어보며

 

지난 3월 23일 조국의 수도 평양에서는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을 모시고 평양시 1만세대 살림집건설착공식이 진행되였다.

착공식장에서 경애하는 원수님의 뜻깊은 연설을 받아안은 전체 건설자들은 사회주의강국건설사에 새로운 승리의 전환점을 마련하는 오늘의 투쟁에서 새로운 평양속도, 새로운 건설기적을 창조할 맹세로 심장을 끓이였다.

새로운 평양속도,

창조와 건설로 비약하던 천리마시대에 《평양속도》라는 영웅적투쟁과 위훈으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하던 전세대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이 가슴뜨겁게 안겨온다.

우리 인민이 어려운 시련과 난관을 박차며 5개년계획의 두번째 해의 령마루에 올라섰던 1958년, 바로 그해의 1월 19일이였다.

당시 우리 조국의 신문들은 5개년계획의 첫해 인민경제발전계획실행총화에 대한 중앙통계국의 보도를 대서특필하여 전하고있었다. 신문지면을 가득 채운 수자와 사실들은 이 땅에 위대한 천리마시대가 도래하였음을 힘있게 펼쳐보이고있었다.

이날 신문을 받아든 모든 사람들은 긍지와 자부심에 넘쳐있었다. 하지만 건설부문의 일군들과 로동계급만은 일요일의 이 하루를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인민경제 여러 부문이 계획을 수행하였으나 건설부문만은 98%로서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우리 인민들에게 더 좋은 살림집을 더 많이 안겨주시기 위해 마음쓰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평양시안의 건설부문 모범로동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떳떳치 못한 수자로 하여 머리를 들지 못하는 그들을 바라보시면서 물론 지난날 건설부문이 뒤떨어진것은 반당종파분자들의 탓이였다고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시였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반당종파분자들은 건설을 공업화할데 대한 우리 당의 정책을 외곡하고 당의 조립식건설방침을 음으로양으로 반대해나섰다.

그자들은 비렬하게도 《조립식집은 지진이 일어나면 다 무너진다.》고 공포분위기까지 조성하였다.

시험적으로 건설하는 조립식다층살림집이 날을 따라 쑥쑥 올라가자 그 집이 무너지기를 바라며 아침저녁으로 남몰래 나와 도적고양이처럼 지켜보는 비렬한짓까지 하였다. 그리고《건설부문에서 혁신이 일어나지 못하고있는것은 이 부문 력량이 다른 부문에 비하여 미약하고 로동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그렇다.》고 건설자대중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망언도 서슴치 않았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날 온 하루를 로동자들과 함께 계시며 그들의 소박한 의견도 들어주시고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수천세대의 살림집을 더 지을수 있는 막대한 예비를 찾아주시였다.

그 다음날에는 시안의 건설부문 지도일군들을 부르시여 현지에 나가서 건설실정이 어떠하며 인민들이 어떠한 살림집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한다고 하시였고 건설장에 이르시여서는 건설에서 랑비를 없애고 쓸모있는 집을 더 많이 지을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면서 또다시 귀중한 예비를 하나하나 찾아주시였다.

건설부문 일군들과 로동자들의 가슴가슴은 크나큰 격정과 흥분으로 세차게 끓어번졌다.

설계가들의 심장이 끓고 시공을 맡은 일군들이 분발하고 지휘관들이 기발을 들고 앞장에 서자 수도의 모든 건설장들에 불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치기 시작하였다. 그런가운데 7 000세대분을 기준으로 하여 세워졌던 그해 수도살림집건설작전이 새 기준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변경되였다.

수도의 설계가들속에서는 이미 80~90% 완성되였던 낡은 설계를 완전히 개작하기 위한 치렬한 돌격전이 벌어졌고 로동자들속에서는 한사람이 한건이상의 예비를 찾아내는 운동이 대중적으로 벌어졌다.

이 고조된 열의속에 진행된 모임에서는 1 600여명의 건설자들이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1만 7 000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할것을 수도건설자들의 이름으로 엄숙히 결의하였다.

이 결의는 얼마후에 또다시 2만세대로 갱신되였다.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려웠지만 최대한으로 증산하고 절약할데 대한 당의 전투적호소는 수도건설자들을 자력갱생진군에로 힘있게 추동한 고무적기치였다.

수도건설장 그 어디에서나 절약투쟁이 힘있게 벌어졌으며 없는것은 만들어내고 모자라는것은 찾아내며 무슨 일이나 자체의 힘으로 해제끼기 위한 경쟁열풍이 휘몰아쳤다.

《로천부재공장》이라는 말도 그무렵에 나왔다.

마침내 영웅적인 수도건설자들은 그해 12월 15일까지 7 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 로력으로 3~4년이 걸려야 지을수 있다던 2만여세대의 살림집을 단 한해사이에 건설하는 기적의 속도, 단 14분만에 한세대씩 살림집을 조립하는 《평양속도》를 창조하여 세인의 경탄을 자아냈다.

당시 우리 나라에 왔던 어느한 외국인은 조선의 건설속도를 《인공위성의 속도》, 우리 인민을 《불사조》라고 격찬하였다.

평양에 와서 1주일간 묵어간 한 외국인이 도착한 날 살림집 1층 벽체조립장면을 사진찍었는데 귀국할 때에는 7층조립까지 끝난 모습을 찍어가지고 떠났다는 이야기도 바로 이 시기에 태여난 일화였다.

전후 천리마대고조시기 건설장마다에 타오른 조립식건설의 봉화, 세상을 들었다놓은 《평양속도》가 창조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방대한 5개년인민경제계획을 앞당겨 완수하고 사회주의건설을 비상히 빠른 속도로 전진시킬수 있게 되였다.

《평양속도》

정녕 그것은 로동계급에 대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크나큰 믿음과 현명한 령도의 결실이였고 제손으로, 우리 식으로 행복의 터전을 마련하려 산악같이 일떠선 우리 로동계급이 발휘한 자력갱생의 산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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