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1-12

주체111(2022)년 1월 12일 《기사》

 

신념과 지조를 지켜싸운 열혈투사의 고귀한 한생

 

지금으로부터 86년전인 주체25(1936)년 1월 12일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선생님께서 서거하신 날이다.

이날에 즈음하여 우리 인민은 온몸이 그대로 누리에 붙는 불이 되시여 조국의 해방을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모든것을 다 바치신 김형권선생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경건한 마음으로 돌이켜보고있다.

일찍부터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의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을 받으며 일제를 반대하는 투쟁의 길에 나서신 김형권선생님께서는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후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조국해방을 위한 성전에 더욱 헌신적으로 참가하시였다.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내놓으신 주체적인 혁명로선을 철저히 관철해나가는 길에 참다운 애국애족이 있고 혁명가의 값높은 삶이 있다는 신념을 깊이 간직하시고 주석님께서 조직지도하신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과 첫 당조직-건설동지사, 조선혁명군의 핵심성원으로서 반일혁명력량의 확대강화와 항일무장투쟁준비사업에 크게 기여하시였다.

항일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발전시켜나갈데 대한 위대한 주석님의 방침을 실현하기 위해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사선의 고비를 수없이 헤쳐야 하는 국내진출의 어려운 투쟁에 앞장서시여 헌신적으로 싸우시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주체19(1930)년 7월 조선혁명군의 한 무장소조를 이끄시고 국내에로 진출하신 김형권선생님께서는 적들의 삼엄한 경계망을 헤치시며 삼수, 풍서를 거쳐 8월 14일 풍산군(당시) 파발리에서 경찰관주재소를 습격하여 이 고장인민들을 악착하게 탄압하던 《오빠시》순사부장을 처단하시였다.

 

 

김형권선생님께서 조국땅 파발리에서 울리신 총성은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쌓이고쌓인 일제에 대한 울분과 원한을 풀어주는 복수의 총성이였으며 국내인민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을 안겨주고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킨 혁명의 메아리였다.

그후 리원군, 북청군, 홍원군 등 함경도일대에 진출하여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시던 김형권선생님께서는 변절자의 밀고로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시였지만 갖은 악형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으시고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형권선생님께서는 생의 마지막순간에도 힘을 모아 《김일성 내 조카이다. 그는 지금 만주에서 큰 혁명부대를 이끌고 왜놈들을 족치고있다. 그 부대가 국내에 쳐들어올 날은 멀지 않았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장으로 싸우라. 무장을 들고 싸워야 왜놈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고 하시며 동지들에게 투쟁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김형권선생님의 이 유언에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계시고 그이께서 령도하시는 한 조선혁명은 반드시 승리하며 전체 조선인민이 주석님만을 따라 싸워나가는 그 길에 나라와 민족의 무궁한 번영과 인민들의 행복한 삶이 약속되여있다는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이처럼 김형권선생님의 생애는 끝없는 헌신성과 희생성으로 령도자를 충성으로 받들어모신 진정한 혁명전사의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꺾이면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투쟁정신으로 혁명가의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지키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의 고결한 한생이였다.

비록 30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세상을 떠나시였으나 주체혁명의 개척기에 위대한 주석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령도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언제나 누리에 붙는 불이 되시여 혁명만을 위해 살며 싸우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선생님의 혁명정신과 투쟁업적은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 소중히 간직되여있으며 조선혁명의 백승의 력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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