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9-23

주체111(2022)년 9월 23일 《글과 사진》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가운데는 개성시 북안동에 있는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도 있다.

옛 개성성 내성의 남문으로서 1391~1393년에 세워진 개성남대문은 화강석을 곱게 다듬어쌓은 장방형평면의 축대와 그우에 세운 문루로 이루어져있다. 축대의 복판에는 량쪽 밑부분에 대돌이 놓여있으며 그우에는 부채돌로 반원을 그리며 쌓아올린 무지개문길이 있다. 축대우에는 적을 쏠수 있게 성가퀴를 돌리고 거기에 여러가지 형태의 쏘는 구멍을 뚫어놓았으며 축대우네모서리에는 비물이 모여서 흘러내리게 하는 시설도 만들어놓았다.

축대우에 세운 문루는 정면 3간, 측면 2간이다. 기둥은 1m높이의 돌기둥우에 듬직한 배부른기둥형식의 나무기둥을 이어 세운것이다. 기둥사이는 중심부분을 강조하고 네 모서리의 기둥들을 다른 기둥들보다 조금 길게 하였으며 안쪽으로 눕혀 경사지게 세웠다. 이것은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목조건축물시공에서 흔히 쓰던 방법중의 하나로서 건물의 안정성과 장중성을 돋구어준다.

기둥우에는 액방과 평판방을 얹었는데 평판방의 량쪽끝을 살짝 들어올려 건물이 훨씬 경쾌해보이게 하였다. 두공은 포식두공으로서 짧은 소혀형제공에 첨차를 맞추어 안팎 3포로 짜올렸다. 그러면서 안도리를 서까래까지 올리였는데 그 방법은 안쪽의 포수를 늘이는 보통방법이 아니라 장여를 겹으로 놓고 그 가운데에 화반을 끼우는 방법으로 해결하였다. 그 모습은 고려말기 두공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있다.

문루의 널마루는 가운데 한간에만 깔고 내부는 모두 통천정으로 하여 안을 시원하게 하였다. 지붕은 겹처마의 합각지붕이며 룡마루, 박공마루, 추녀마루, 지붕면은 모두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었다. 굳건히 서있는 몸체에 어울리게 날아갈듯이 가볍게 쳐들어 경쾌해보이는 추녀, 은근하면서도 무게가 있는 문루의 모루단청도 이채롭다.

우리 나라 옛 건축술의 면모를 보여주는 개성남대문은 문루에 우리 나라 5대명종의 하나로 알려진 연복사종이 있는것으로 하여 더욱 유명하다.

1346년에 주조된 연복사종은 본래 고려시기의 이름난 사찰인 연복사에 있던 종이였다.

당시 연복사는 개성남대문의 서남쪽에 위치하고있었는데 1563년 화재로 타버리였다. 그후 연복사종은 개성남대문에로 옮겨졌다.

종의 크기는 아구리직경 1. 9m, 높이 3. 12m, 두께 0. 23m이며 질량은 약 14t이다.

이 종은 고려시기의 다른 종들과 그 모양새와 무늬의 내용, 배치에서 다르다. 종의 몸체는 허리에 여러줄의 굵은 선을 돌려 아래우 두 부분으로 나누고 거기에 불상과 불경, 여러가지 문양과 종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종의 아구리테두리는 매우 률동적인 굴곡으로 처리하고 그 테두리를 따라 물결을 타고 흐르는 모습으로 물고기, 룡 등을 새긴것이 독특하다. 특히 종고리의 룡장식은 매우 생동하여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듯 하다. 동합금으로 주조된 연복사종은 고려시기의 금속주조술과 금속공예술의 높은 경지를 잘 보여주고있다.

연복사종은 겉면장식들이 세련되고 우아하고 장중할뿐아니라 소리 또한 아름답고 맑아 100여리까지 퍼졌다고 전해오고있다. 이 종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개성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기 위하여 밤 10시(인경이라고 하는데 성문을 닫는 시간)와 새벽 4시(파루라고 하는데 성문을 여는 시간)에 울리군 하였다고 한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의 야만적폭격으로 개성남대문은 파괴되였으며 연복사종도 여러군데에 손상을 입었다. 그후 개성지방의 귀중한 력사유적들을 잘 보존하고 원상대로 복구할데 대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개성남대문은 주체43(1954)년에 원상대로 훌륭히 복구되게 되였다.

세련되고 장중한 형태와 뛰여난 건축술, 우아하고 섬세한 금속공예술로 우리 민족문화의 고유한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개성남대문과 연복사종은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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