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9-19

주체111(2022)년 9월 19일 《소식》

 

대학살진상규명과 배상을

-간또대지진 조선인대학살 99돐 추도모임 각지에서 진행-

 

1923년 9월 1일 간또대지진 직후 일본당국에 의해 군대와 경찰, 《자경단》, 일반시민들에 의한 조선인대학살이 감행되였다.

간또대지진 조선인대학살 99돐이 되는 올해 9월 1일~11일에 걸쳐 도꾜, 사이다마, 가나가와, 지바, 군마 등의 각지에서 대학살희생자들에 대한 추도모임이 진행되였다.

도꾜 스미다구 요꼬아미쵸공원에 위치한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추모비앞에서 9월 1일 《도꾜동포추도모임》이 진행되였다.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중앙상임리사회 남승우부의장과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도꾜도본부 고덕우위원장을 비롯한 총련일군들과 재일동포, 일본인사들 약 100여명이 참가하였다.

추도모임에서는 먼저 전체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여 묵상하였다.

간또대지진 조선인희생자추도비앞에서 진행된 도꾜동포추도모임

 

이어 고덕우위원장과 도꾜조선인강제련행진상조사단의 니시자와 기요시대표가 추도사를 하였다.

고덕우위원장은 먼저 일제식민지지배하에 있던 99년전에 이역땅에서 참혹하게 학살된 조선인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그는 간또대지진 당시의 조선인학살사건은 국제법상의 집단학살이며 그 계기는 일본당국이 날조한 류언비어였다고 하면서 그 근원에는 조선민족에 대한 배타주의사상이 존재한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일본정부가 유가족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하기는커녕 학살의 력사를 은페, 외곡하려고 하고있을뿐만아니라 일본의 각종 공적지원제도에서 재일조선인자녀들을 배제하는 등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새로운 차별을 가하고있다고 단죄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본정부에 대하여 조선인학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 조일평양선언에 기초한 과거청산, 총련과 재일조선인 특히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부당한 민족적차별과 인권침해를 즉시 중단할것을 요구하였다.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 유가족협회에서 보내온 추도문이 랑독되였다.

다음으로 추도모임에 참가한 일우호촉진 도꾜의원련락회 가와노 다쯔오공동대표(신쥬꾸구의원), 평화, 인권, 환경연단 후지모또공동대표가 발언하였다.

모임의 마감으로 전체 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여 꽃을 진정하였다.

같은 날 오전 이곳에서는 일협회도꾜도련합회 등이 주최하는 간또대지진 99돐 조선인희생자추도모임도 진행되였다.

한편  9월 1일 사이다마현의 《상천사》에서 《간또대지진 99주년 동포희생자 오오미야위령제》가 진행되였다.

코로나감염방지대책의 일환으로 주최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사이다마현 중부지부의 상임위원들과 녀성동맹원들, 고문들, 재일본조선청년동맹원들이 지역동포들을 대표하여 참가하였다.

 

간또대지진 99주년 조선인희생자 위령제

 

위령제에서는 묵상이 있은 다음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사이다마현 중부지부 김성위원장이 추도사를 랑독하였다.

그는 재일동포력사상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원한어린 9월 1일이 99번째로 다시 왔다고 하면서 아무런 죄없이 억울하게 학살된 동포선렬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하였다.

지진직후의 류언비어에 편승한 일본 내무성은 《조선인폭동》에 《경계》할데 대해 각 지역의 지사들에게 지시하였다.

그 산물로 결성된 《자경단》이 동포들을 칼과 창으로 학살하였다.

사이다마현에는 도꾜에서 피난해오거나 《자경단》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난 동포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23살이였던 강대흥청년도 그 한사람이였으나 《자경단》에 잡혀 폭행을 당한 끝에 9월 4일에 사망하였다.

《상천사》에는 강대흥청년의 묘지가 세워졌다.

2001년에는 위령비가 건립되여 사이다마현에서 희생된 약 240명의 조선인희생자를 추모하고있다.

이날 위령제참가자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두번다시 이런 참상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피의 교훈을 후대들에게 정확히 전해나갈것을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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