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8-07-18

주체107(2018) 년 7월 18일 《혁명일화》

 

창성땅에 벼농사의 새 력사를 펼쳐주시여

 

평안북도 창성군은 도안에서 산이 제일 많은 군으로서 산지가 군면적의 95%를 차지한다.

그런것으로 하여 창성군은 해방전까지만 하여도 사람못살 고장으로 소문이 났으며 특히 벼농사를 할만한 땅이 없어 흰쌀밥을 한번 배불리 먹어보았으면 하는것이 이 고장 사람들의 소원이였다.

제상에 올려놓을 밥 한그릇 담을 쌀도없어 밥사발밑에는 강냉이밥이나 삶은 감자를 놓고 그우에 흰쌀밥을 얇게 씌운 《고깔밥》, 《감투밥》을 만들었다는 애달픈 이야기도 이 고장에서 나온것이라고 한다.

쌀에 대한 창성사람들의 숙원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풀어주시였다.

주체53(1964)년 7월 어느날 이른 아침이였다.

창성군을 찾으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군안의 일군들과 함께 어느한 리로 발걸음을 옮기시다가 아담한 마을들과 밭들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에 이르시였다.

산골마을의 전경을 한참동안이나 둘러보시던 그이께서는 창성군에서도 논을 풀어 벼농사를 짓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문득 여기에 논을 풀만한 데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잡곡밥을 먹는것을 숙명으로 생각하면서 벼농사에 대하여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군들은 그이의 뜻밖의 물으심에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이미 결심하신듯 강건너 등판에 펼쳐진 밭을 가리키시며 저기에 논을 풀수 있지 않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그제서야 한 일군이 물만 끌어올리면 논을 풀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일군의 말을 수긍하여 주신 그이께서는 양수기와 디젤기관을 한대씩 주고 열구기관도 주겠으니 그것을 리용하여 논을 풀어야 하겠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밭가운데 띠염띠염 널려있는 집들을 산기슭에 옮겨짓고 거기에다도 논을 풀라고, 여기 밭들을 다 논으로 풀자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그리고 도에서 다음해 봄부터 논풀이를 시작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늦으니 올해 가을부터 시작하라고 간곡히 교시하시였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며칠후에는 한 일군을 다시 부르시여 군적으로 논을 얼마나 풀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료해하시고 나서 전에 가본 곳도 논을 풀수 있지만 그 아래쪽으로 더 내려가서 강건너 언덕우에도 논을 풀 자리가 더 있더라고, 2단양수를 하면 얼마든지 물을 끌수 있다고, 거기에도 논을 풀라고 과업을 주시였다.

이날 그이께서는 어느 리에는 어느곳에 논풀자리가 얼마만큼 있으며 어느 골짜기의 물을 어떤 방법으로 논에 끌어올리겠는가 하는것에 대하여서까지 구체적인 교시를 주시였다.

일군들은 후에야 위대한 주석님께서 창성사람들에게 흰쌀밥을 먹이시려고 이미 여러차례 군안의 곳곳을 친히 답사하시면서 논풀자리와 물원천, 물길을 쨀 자리까지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이께서는 그후 수많은 양수기와 발동기, 불도젤을 보내주시였으며 군에서 논벼농사를 시작하였을 때에는 수확고를 높이기 위한 방도들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 나날 우리 주석님께서 걷고걸으신 포전길은 얼마이며 논두렁에서 맞으신 눈비는 그 얼마인지 모른다.

오늘 창성땅에 펼쳐진 흐뭇한 벼농사작황에는 이렇듯 산간지대인민들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한평생 로고를 다 바쳐오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열렬한 애국애민의 헌신이 깃들어있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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