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5-12-23

주체104(2015)년 12월 23일 《기사》

      

                                 민족의 명산에 비낀 통일의 념원

 

금강산은 황홀하고 기묘한 절경으로 하여 조선의 명산 세계의 명산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하여 16세기 이름있는 명필가 양사언은 산우에 산 솟으니 하늘우에 땅 생기고 물가에 물 흐르니 물가운데 하늘일세라고 하면서 금강산 일만이천봉우리 모두가 백옥이라고 노래했는가 하면 세상사람들은 《금강산을 보기 전에는 산수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말라.》며  누구나 한번 보기를 소원했다고 한다.

 

 

 

이처럼 뛰여난 절경으로 이름높은 명산이였지만 외세가 그어놓은 군사분계선으로 하여 금강산을 찾는 남녘동포들의 모습은 조선전쟁이후 수십년간 찾아볼수 없게 되였다.

수수천년 한지맥을 이은 조국땅이여도 자유로이 오가지 못하고 지척이면서도 갈수 없는 남녘동포들의 꿈과 소망이였던 금강산관광길을 열어주신 분은 뜨거운 동포애를 지니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사실 금강산지구는 최전연지구이고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북과 남의 방대한 무력이 대치되여있어 도저히 관광이 허용될수 없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금강산을 보고싶어하는 남녘동포들의 절절한 심정을 헤아리시여 주체87(1998)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당시)을 만나주시고 금강산관광과 관련하여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 지역을 열어놓으시는 결심을 내리시였다.

그리하여 금강산을 보았으면 하는 남녘동포들의 소원은 드디여 풀리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금강산은 민족분렬로 응어리졌던 아픈 상처를 털어버리는 통일의 명산으로 더더욱 빛을 뿌리게 되였다.

금강산은 관광만이 아닌 통일의 꿈을 안고 찾아온 남녘의 수많은 정치인들과 종교인들, 대학생들과 기업인들, 흘어진 가족, 친척들을 비롯한 각계층의 물결로 련일 끓어번졌다.

특히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해주시고 6.15시대를 열어주시여 금강산은 《6.15의 옥동자》, 《우리 민족끼리》의 상징으로 겨레의 가슴마다에 통일의 환희를 더해주었다.

남녘동포들에게 있어서 금강산관광은 단순한 산천구경이 아닌 통일의지를 가다듬고 혈육의 정을 두터이 하는 오작교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지난 10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에 참가하였던 남조선 현대아산의 한 직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다시 금강산에 들어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저는 현대가 처음 금강산에서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있었습니다. 6.15땐 정말 굉장했죠, 금강산이 비여볼 새가 없었으니까요, 그때가 그립습니다.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금강산관광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현대에 많은 배려를 돌려주셨죠, 김정은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님의 결단에 의해 이번 리산가족상봉도 마련되였는데 선대분의 유지를 이어나가신다니 금강산관광도 다시 열리고 남북관계도 잘되리라 기대합니다.》라고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렇다. 금강산관광길에 대한 애틋하고도 뜨거운 마음들은 어제도 오늘도 동족사이의 화해와 협력, 관계개선에 대한 겨레의 열망과 더불어 남녘동포들의 마음속에 더욱더 소중히 자리잡고있다.

하지만 이번 북남당국회담에서 보여준바와 같이 남조선당국은 금강산관광재개와 관련한 공화국의 숭고한 동포애적인 제의에 당치도 않은 《3대전제조건》과 그 무슨 《사업권회복》을 운운하면서 끝끝내 외면해버리는 파렴치한 망동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다.

남조선위정자들이 제아무리 발악해도 민족의 명산 금강산을 향한, 통일의 향수로 마음들을 적시는 남녘동포들의 발걸음을 결코 가로막을수 없다.

봉우리는 봉우리마다 골은 골마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통일념원과 뜨거운 동포애가 비껴있는 금강산은 지금도 겨레를 손저어 부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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