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9-12-24

주체108(2019) 년 12월 24일 《기사》

 

변함없는 충신의 모습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회고록《세기와 더불어》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다.

《김정숙은 해마다 잊지 않고 소박하게나마 내 생일상을 차려주었지만 나는 가정을 이룬 후 10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도 그에게 생일상조차 차려주지 못하였습니다. 자기 생일에 대해서는 말조차 번지지 못하게 하는것이 김정숙의 성품이였습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탄생일, 동지들의 생일은 언제나 잊지 않고계셨다가 꼭꼭 성의있게 차리시였으나 자신의 탄생일은 아예 없으신듯 그 무엇도 허용하지 않으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열세번째 생신날

 

1930년 12월 24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열세번째 생신날에 리춘팔이라는 지주집에서 연자방아를 돌리시였다.

전날 녀사의 어머님께서 지주를 찾아가 래일이 우리 정숙이 생일인데 하루만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사정하였지만 지주는 빚진 놈의 신세에 생일은 무슨 생일인가고 하면서 절대로 안된다고 딱 잡아뗐다고 한다.

어쩌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오셨지만 생일날도 고역에 시달릴 따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지는것 같아 더운밥이라도 한끼 먹이시려고 어머님께서는 다음날 연자방아간을 찾아가시였다.

추위가 여간 심하지 않은 때였지만 녀사께서는 연자방아를 쉼없이, 힘겹게 돌리고계셨다.

얼어서 퍼렇게 된 얼굴과 손, 부르트고 터갈라져 피가 내밴 입술…

어머님과 어린 동생이 대신 연자방아를 돌리며 잠시라도 쉬게 하려고 하자 녀사께서는 굳이 만류하시였다.

무엇때문에 어머님까지 이 집 연자방아를 돌리겠는가고, 어머님과 기송이가 이 집 쌀 한말 더 찧어준다고 우리 집처지와 내 처지가 달라지겠는가고, 그저 가슴만 더 아플뿐이라고 하시며.

녀사께서는 입술을 옥물고 솟구치는 눈물을 애써 참으시며 하루종일 연자방아를 돌리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처음으로 맞으시는 생신날

 

1945년 12월 24일.

이날은 녀사께서 해방된 조국땅에서 처음으로 맞으시는 생신날이였다.

그러나 녀사께서는 생신날을 평양으로 향하는 유개화차안에서 맞으시였다.

그날 아침 남먼저 일어나시여 물도 길어오고 청소도 하시는 녀사를 보고 한 녀투사가 달려나와 왜 생신날에까지 이러시는가, 어렸을 때 자기 부모들은 생일날 일을 하면 일생동안 일밖에 차례지는것이 없다고 했다고 하면서 아예 일손을 잡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지난날에는 하도 고역에 시달리다보니 우리 부모님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야 해방된 조국땅에 로동이 기쁨이고 행복인 그런 사회를 건설할 사람들이 아닌가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손에 총을 잡고 일제와 싸우면서도 어느 하루 작식일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탓인지 물을 긷고 불을 때고 밥짓는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밥맛도 나지 않는다고 흔연히 말씀하시였다.

그날 함께 렬차를 타고있던 항일투사들이 성의를 다했으나 그때의 형편에서 겨우 반찬 몇가지를 갖춘 소박한 음식상을 차려드릴수밖에 없었다.

녀사께서는 생신날 떡 한끼도 대접 못한다고 안타까와하는 그들에게 자신은 오히려 그게 더 마음 편하고 좋다고, 앞으로 인민들이 잘살게 되였을 때 우리도 생일과 명절을 잘 쇠여보자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녀사의 첫 탄생일은 이렇게 지나갔다.

 

그 다음해 생신날

 

1946년 12월 23일.

저녁식사를 마치신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녀사와 그리고 댁에서 함께 생활하고있던 친척녀성이 있는 자리에서 래일은 정숙동무생일인데 뭘 좀 준비안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자 녀사께서는 밝게 웃으시며 《장군님 생신날도 못 쇠게 하시는데 제 생일을 어떻게 쇠겠습니까.》라고 대답올리시였다.

주석님께서는 해방후 자신의 탄생일을 쇠는것을 극히 만류하시였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친척녀성은 자기를 바라보시는 주석님께 무엇이라 말씀올리면 좋을지 몰라했다.

사실 생일날에는 본인이 아니라 옆에서 상을 차려주는것이 도리인것이다.

그래서 며칠전부터 그는 은근히 마음을 쓰며 음식감들을 마련하려고 시장에도 슬그머니 다녀왔었다.

그런데 이런 눈치를 알아차리신 녀사께서는 엄한 음성으로 생각 좀 해보라고, 장군님께서 저렇게 힘들게 일하시는데 우리가 헛딴 일에 정신을 쓰면 되겠는가고, 우린 어떻게 하면 장군님을 더 잘 모시겠는가 이 한가지생각만 하자고 준절히 타이르시였다.

그렇게 되여 다음날 아침 보통날과 다름없는 소박한 식탁앞에서 녀사께서는 주석님의 축하를 받으시는것으로 해방된 조국에서의 두번째 탄생일도 맞으시였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생일을 잊겠다고 하시며

 

어느해 녀사의 댁을 찾아온 녀투사들은 소박하게나마 녀사의 생일상을 차려드린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녀투사는 내도산에서 맞던 녀사의 탄생일에 대하여 추억했다.

…1935년 12월 24일 아침, 여느때없이 모든 유격대원들에게 보리밥이, 자신께는 특별히 당콩밥이 차례지자 곧 사연을 아시게 된 녀사께서는 작식대원이였던 그 녀투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였다.

식량사정이 곤난한 때 제 생일을 쇠주겠다고 모든 대원들에게 다 밥을 지어주었으니 얼마나 랑비가 많았는가. 나는 혁명이 승리하는 날까지 생일을 잊겠다. 혁명이 승리하기 전에 다시 또 오늘처럼 생일을 쇠주면 아예 음식을 안 먹겠다. …

이렇게 회상하며 녀투사는 녀사께 이제는 나라도 찾았는데 오늘은 이 닭알이라도 마음놓고 들라고 권해드리였다.

녀사께서는 용케도 그때 일을 잊지 않았다고, 정 소원이 그렇다면 진수성찬으로 여기고 어디 한번 실컷 먹어보자고 하시며 모두에게 닭알을 쥐여주시고 자신도 한알 집어드시였다.

그러시다가 어쩐지 오늘은 산에서 싸울 때 생각이 더 난다고,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씹으며 함께 싸우다 쓰러진 동지들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목이 메여 말씀하시였다.

정녕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은 자신의 생신날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동지들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혁명가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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