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0-03-23

주체109(2020) 년 3월 23일 [상식]

 
조선국민회​

 

조선국민회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주체6(1917)년 3월 23일 평양 학당골에서 결성하신 반일지하혁명조직이다.

조선국민회의 목적은 전체 조선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며 참다운 문명국가를 세우는데 있었다.

조선국민회의 투쟁과업은 광범한 군중을 묶어세워 그들을 반일민족해방투쟁에 한결같이 조직동원하고 국민회조직을 튼튼히 꾸리는것이였으며  조선사람자체의 힘으로 일제를 몰아내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하는것이였다.

조선국민회는 우리 나라에서 3.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국내외를 포괄한 가장 큰 반일지하혁명조직으로서 그 이전시기의 반일단체들과는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조직이며 인민대중속에 깊이 뿌리박고 그 조직이 매우 치밀한 혁명적이고 반제자주적립장이 투철한 조직이였다.

조선국민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은 비로소 옳바른 투쟁목적을 가지고 광범한 인민대중을 묶어세운 중추적조직을 가지게 되였으며 반일혁명력량의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조선국민회는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목숨 걸고 싸울 원대한 뜻을 품은 준비되고 검열된 애국자들만 엄밀히 선발하여 그 회원으로 받아 들였다. 조선국민회에는 로동자, 농민, 교원, 학생, 군인(독립군), 상인, 종교인, 수공업자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다 망라되여 있었다. 국민회는 종적인 조직체계를 가지고 회원호상간에는 물론 비밀문서들에도 암호를 사용하였으며 매해 숭실중학교 개학날을 계기로 회원들의 정기적인 모임체계도 세워 놓았다. 그리고 지방조직들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장들을 두었으며 해외인사들과의 련계를 위하여 베이징과 단동에 통신원들을 배치하였다. 조선국민회는 그 이후 조직된 학교계, 비석계, 향토계와 같은 합법적인 외곽단체들로써 철저히 위장하고 조직을 확대해 나갔다. 그리하여 국민회조직은 평양을 비롯하여 평안남북도일대와 황해도, 전라남북도, 경상남북도, 경기도 등 국내각지는 물론 중국의 베이징, 상해, 길림, 무송, 림강, 장백,류하, 관전, 단동, 화전, 흥경 등 국외에까지 확대되였다. 조선국민회는 조직확대사업과 함께 광범한 인민들을 반일투쟁에 불러 일으키기 위한 선전선동활동을 힘 있게 벌렸으며 무장활동에 필요한 자금과 무기를 마련하고 군사간부를 양성하는 사업 등을 적극 진행하였다. 그러던중 주구놈의 밀고로 1917)년 가을 조직의 일부가 드러나 조선국민회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였다. 수많은 조직들이 파괴되고 전국적범위에서 100여명의 국민회성원들이 검거되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도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여 주체7(1918)년 가을까지 옥중생활을 하시였다. 그러나 김형직선생님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조선국민회조직은 시급히 복구되였으며 조선국민회는 1918년 11월과 1919년 7월에 청수동회의를, 1919년 8월에는 관전회의를, 1925년 8월에는 무송회의를 소집하고 산하 조직과 조직원들앞에 새로운 투쟁방침과 과업들을 제시하였으며 그 관철을 위하여 군중을 계몽시키는 사업과 무장대의 군사활동을 과감히 조직전개하였다.

조선국민회는 김형직선생님의 지도밑에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민족주의운동으로부터 무산혁명에로 방향전환시키며 반일독립운동의 단결을 이룩하는데서 불멸의 업적을 이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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