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10-08

주체110(2021)년 10월 8일 《가사》

 

을미사변을 통해 본 일제의 극악한 국권유린범죄

 

피로 얼룩진 일제의 조선침략사 갈피들마다에는 만사람을 경악케 하는 극악한 만행들이 수없이 기록되여있다. 그가운데는 력사에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명성황후살해사건도 있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예속화책동은 극도에 달하였다.

당시 사대주의에 명줄을 걸고 저들의 부귀와 향락만을 추구해오던 명성황후를 비롯한 조선봉건지배층은 날로 커가는 일제의 침략야망을 억제하려는 타산으로부터 친로배일정책을 실시하였다.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으로 하여 저들의 대조선침략계획이 파탄될 우려를 느낀 일제는 그 출로를 당시 친로파의 우두머리였던 명성황후제거에서 찾고 그 계획을 실행함으로써 조선봉건정부의 친로정책을 친일정책으로 돌려세우려고 꾀하였다.

일제는 살인음모의 주역을 담당할 인물로 당시 가장 음흉하고 악착하기로 소문난 륙군중장 미우라를 선정하고 그를 조선주재 일본공사로 임명하였다.

1895년(을미년) 10월 8일(음력 8월20일) 이른새벽 미우라의 총지휘밑에 일본군대, 경찰, 민간인깡패 등으로 무어진 살인악당들은 경복궁의 광화문을 들이쳤다. 황궁시위대의 필사적인 저항에 부딪친 악당들은 치렬한 총격전끝에 시위대 련대장을 사살하고 황제의 거처지를 포위하였다. 황제와 황태자를 감금한 놈들은 명성황후의 침전인 곤녕전으로 뛰여들어 그를 색출하기 위해 피에 주린 이리떼마냥 돌아쳤다. 하지만 숱한 궁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달아나는 혼잡속에서 그를 쉽게 찾아낼수 없게 되자 살인악마들은 궁녀들을 닥치는대로 란도질하기 시작하였다. 놈들은 궁녀들을 모조리 죽이면 그가운데 명성황후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쓰러진 궁녀들속에서 끝끝내 명성황후를 찾아낸 살인귀들은 채 숨이 지지 않은 그를 홀이불에 둘둘 말아 곤녕전부근의 소나무숲으로 끌고갔다. 그리고는 이미 준비해놓았던 장작더미우에 그를 올려놓고 석유를 뿌려 무참히 불태워죽이였으며 타다남은 몇개의 뼈쪼각마저 부근의 못속에 집어던지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참으로 인두겁을 쓴 야수들이 아니고서는 상상할수 없는 몸서리치는 만행이였다.

그때의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였던지 이 사건에 직접 관여하였던 한 일본인은 후날 자기의 수기에서 이렇게 썼다.

《선혈로 물든 시체에는 석유가 뿌려지고 불이 달렸다. 순식간에 시체는 화염에 싸여 이상한 냄새를 풍기였다. 참으로 귀곡추추(귀신도 서글프게 운다는 뜻)하였다.》

을미사변은 한 나라의 자주권과 존엄을 무참히 유린한 국가테로행위로써 일본반동들의 강도적본성과 야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으며 일제야말로 조선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 국제법도 인륜도덕도 안중에 없는 극악한 살인마, 최대의 인권범죄자라는것을 세상에 낱낱이 고발해주고있다.

일제는 그후 조선을 식민지예속화하기 위한 책동을 더욱 로골화하였으며 1910년 8월에는 불법무법의 《한일합병조약》이라는것을 강압체결하여 우리 나라를 저들의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일제의 식민지통치시기 조선인민이 겪은 수난의 력사를 어찌 한두마디 말로 다 표현할수 있으랴.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강제련행, 랍치하여 죽음의 전쟁마당과 고역장들에 내몰아 100여만명을 살해하고 20만명의 조선녀성들에게 치욕스러운 일본군성노예생활을 강요한 일제의 식민지통치사. 그 하나하나는 제국주의침략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었던 가장 잔인무도하고 악랄한 범죄행위들이였다.

하지만 일본당국은 오늘까지도 죄악으로 가득찬 저들의 피비린 과거사에 대해 사죄와 보상은커녕 력사외곡과 령토강탈책동에 매여달리면서 군국주의부활에 열을 올리고있다.

이것은 천년숙적 왜나라족속들에 대한 우리 민족의 분노와 증오의 피를 더욱 세차게 끓게 하고있으며 복수의 의지를 백배해주고있다.

렬도족속들은 명심해야 한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만고죄악을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그 대가를 끝까지 받아내고야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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