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10-10

주체110(2021)년 10월 10일 《기사》

 

첫 태양찬가와 더불어 영생하는 혁명시인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혁명앞에 모진 시련의 고비가 닥쳐올 때마다 나는 지난날 온몸을 애국으로 불태우며 투쟁속에서 젊음을 빛내던 살틀한 동지 김혁을 생각하며 그가 너무도 일찌기 세상을 떠나간데 대하여 애석한 심정을 금치 못한다.》        

김혁동지는 1907년 10월 11일 평안북도의 어느 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나 어린시절부터 나라 잃은 민족의 설음과 고통을 뼈아프게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탁월한 혁명의 령도자를 모시지 못하여 절망과 비관에 빠져 헤매이던 김혁동지는 위대한 주석님의 품에 안기게 되여서야 비로소 참된 삶의 길을 걷게 되였다.

김혁동지가 위대한 주석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된것은 주체16(1927)년 여름이였다.

먼길을 찾아온 자기를 뜨겁게 맞아주시는 위대한 주석님을 뵈옵는 순간 김혁동지는 거치른 방황의 길을 헤매며 간절히 바라고바라던 탁월한 령도자를 모시게 된것으로 하여 솟구쳐오르는 흥분을 걷잡을수 없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참된 혁명의 길에 들어선 김혁동지를 손잡아 이끄시여 《ㅌ. ㄷ》와 반제청년동맹성원으로, 공청원으로 키워주시였으며 혁명실천속에서 단련시키시였다.

김혁동지는 위대한 주석님의 령도를 받들어 항일혁명대오에서 활동하는 과정에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탁월한 령도력, 한없이 고매한 덕망을 지니신 주석님의 위인적풍모에 더욱 깊이 매혹되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위대성을 사람들의 심장속에 깊이 심어주어 온 민족이 그이를 조선혁명의 령도의 중심, 통일단결의 중심으로 높이 받들어모시고 끝까지 따르도록 하는것을 시대와 력사앞에 지닌 자신의 신성한 의무로, 필생의 사명으로 새긴 김혁동지는 붓을 들었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짓밟힌 조선에 동은 트리라

2천만 우리 동포 새별을 보네

 

김혁동지가 심혈을 다하여 창작한 불멸의 혁명송가 《조선의 별》의 가사의 구절구절, 선률의 마디마디에는 일제에게 짓밟힌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줄 위대한 령도자를 맞이한 조국인민의 끓어넘치는 환희와 기쁨, 희망이 맥맥히 흘러넘치였으며 찬란한 향도성을 우러러따르며 기어이 조선의 새날을 안아오려는 불같은 맹세가 어리여있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혁명임무수행에서 남달리 책임적이고 열정적이며 충실한 집행력을 소유한 김혁동지를 주체19(1930)년 8월초 할빈으로 파견하시였다.

할빈으로 간 김혁동지는 각계각층 군중속에 깊이 들어가 위대한 주석님께서 카륜회의에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방침을 적극적으로 해설선전하고 청년들을 교양하며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당조직을 내오기 위한 준비사업과 무기를 확보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갔으며 국제당련락소와의 련계도 지어놓았다.

이렇게 혁명의 한개 지역을 담당한 책임자답게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던 김혁동지는 어느날 할빈도리의 비밀련락소에서 불의에 달려든 적들의 포위속에 들게 되였다.

마지막탄알까지 원쑤의 가슴팍에 안긴 김혁동지는 목숨을 버려서라도 위대한 주석님의 안녕을 지켜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를 가지고 3층에서 결연히 뛰여내렸다.

그런데 강철같은 육체가 그의 뜻을 배신하였다.

김혁동지는 자결에서 성공하지 못한채 적들에게 붙잡혀 려순감옥으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박해에 시달리다가 감옥에서 생을 마치였다.

한없이 숭고한 혁명적의리를 지니신 위대한 주석님의 품이 있어 김혁동지는 비록 너무도 일찌기 우리곁을 떠났지만 령도자와 인민대중의 통일단결의 새 력사를 개척한 선구자의 한사람으로, 영원한 태양의 노래와 더불어 영생하는 혁명시인으로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 빛나게 아로새겨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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