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6-14

주체111(2022)년 6월 14일 《소개》

 

애국렬사 리준

 

 

리준(1859-1907)은 일제의 조선침략책동이 극도에 이르렀던 시기 그에 항거하여 투쟁한 애국문화활동가이다.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한 그는 로일전쟁을 계기로 일제의 조선침략책동이 강화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반일애국운동에 나섰다.

1904년 6월 일제의 토지략탈을 반대하는 서울시민들의 투쟁을 조직하고 이끌었으며 그해 12월에 친일주구단체인 《일진회》에 대항하여 《공진회》를 조직하고 친일주구들과 봉건통치배들의 매국배족행위를 반대하는 투쟁을 벌리였다. 《공진회》가 해산당한 후 1905년에 《헌정연구회》를 조직하였으며 1906년에 《한북흥학회》를 조직하고 청소년들과 대중속에 애국심과 교육열의를 고취하였다.

1907년 6월 네데를란드의 수도 헤그(스흐라벤하헤)에서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그곳에 가서 국제사회여론을 불러일으켜 일제의 조선강점에 타격을 주려고 타산하였다. 그는 전 의정부 참찬 리상설(1870-1917), 전 로씨야주재 공사관 서기 리위종과 함께 고종의 밀서를 가지고 헤그에 가서 정식 조선대표로 회의에 참가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제국주의자들의 모략과 음모속에서 진행된 이 회의에서 의장은 조선대표의 참가를 거부하였다.

정식대표로 참가할수 없게 된 리준 등은 국제기자협회의 연단과 그곳의 여러 출판물들을 통하여 일제가 저지른 조선침략의 범죄행위를 폭로단죄하였다.

리준은 일제 및 그와 공모결탁한 제국주의렬강의 모략책동을 반대하는 활동끝에 배를 갈라 죽음으로써 항거하였다.

리준은 자기의 배를 갈라 죽음으로 조선은 완전자주독립국가이며 《을사5조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항거의 정신을 보여주었으나 절대로 제국주의자들에게 환상을 가져서는 안되며 진정한 민족적독립은 외세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로 뭉친 민족의 주체적인 힘에 의하여서만 지켜지게 된다는 피어린 교훈을 남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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