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6-16

주체111(2022)년 6월 16일 《기사》

 

이런 미덕은 우리 사회에서만 꽃펴날수 있다

수도의 한 녀성을 위해 사랑과 정을 기울이고있는 함흥시의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온 나라에 서로 돕고 이끄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미풍이 차넘치게 하여 우리 사회를 화목하고 단합된 일심단결의 대가정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앞에 한 녀성이 앉아있었다. 그는 최대비상방역체계가 가동된 때부터 매일이다싶이 군의부문 전투원들을 위해 뜨거운 지성을 바쳐가는 모란봉구역 성북동 61인민반의 강별이동무였다.

품들여 마련한 물자들이 매번 본인에게 되돌아오군 했지만 남달리 몸이 불편한 속에서도 군인들에게 변함없는 진정을 기울이는 녀인, 거기에는 어떤 곡진한 사연이 깃들어있는지.

하지만 그는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잠시후에야 그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고마운 제도와 아름다운 인간들이 저를 이길로 떠밀었습니다.》

* *

강별이동무가 뜻밖의 일로 두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것은 3년전이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3살, 한창나이에 불구의 몸이 되고보니 가슴은 미여지는듯하였다.

사는것이 두려웠다. 그러나 자기가 나약해지면 자식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모성애가 그를 무섭게 채찍질하였다. 제발로 부엌에 나가 이전처럼 동자질도 하고 학교로 가는 자식을 바래주고싶은것이 그의 소원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인민반장이 그를 찾아와 함흥시 사포구역에서 사는 한 부부가 하반신마비로 걷지 못하는 처녀를 등에 업고다니며 치료해주어 효과를 보고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것이였다.

혈육도, 아는 사이도 아닌 처녀에게 뜨거운 진정을 바친 주인공들의 이름을 그는 몇번이고 곱씹었다.

(강진혁, 주옥별…)

강별이동무는 가슴이 울렁이였다. 그러는 그를 이웃들이 겨끔내기로 찾아왔다. 인민반장의 이야기를 듣고 반가움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느라니 강별이동무는 잠시나마 나약해졌던 자기가 민망스러웠다.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는 마음들은 얼마나 고마운것인가. 저들을 위해서라도 꼭 일어서야 한다.)

강별이동무는 함흥시 사포구역에 살고있다는 그 부부를 한번도 만나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의 치료를 위해 마음쓰던 의료일군들처럼, 정다운 이웃들처럼 느껴졌다.

그는 곧 강진혁, 주옥별부부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 몸상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고나서 그가 미안한 어조로 꽤 고칠수 있겠는가고 물었을 때였다.

전화기에서 녀인의 정다운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병치료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신심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서 함흥으로 오세요. 우리가 힘자라는껏 돕겠어요.》

그로부터 며칠후 강별이동무는 인민반원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렬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강별이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솔직히 혈육도 없고 처음 가보는 생소한 곳이여서 걱정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연한 생각이였습니다.》

길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그가 함흥에 도착한것은 다음날 이른아침이였다. 함흥역에서 네바퀴차에 몸을 싣고 주위를 둘러보는 그에게 낯모를 사람들이 다가왔다. 주옥별동무와 그의 남편이였다.

불편한 몸으로 먼길을 오느라 수고가 많았겠다고, 이렇게 믿고 찾아와주어 고맙다고 하는 그들의 말에 강별이동무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고맙단 말인가.)

그는 이런 생각으로 자기가 어떻게 함흥림상의학연구소 미세외과연구실까지 왔는지 미처 알수 없었다. 실장 량형민동무를 비롯한 의료일군들이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이 하는 말도 방금전 주옥별동무와 그의 남편이 하는 말과 꼭같았다.

그들은 환자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의료일군들의 얼굴에 점차 긴장감이 비끼였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심했던것이다.

그날 량형민동무의 방에서는 오래도록 협의회가 진행되였다. 장시간의 협의회끝에 량형민동무가 하는 말은 길지 않았다.

《우리모두 환자를 친혈육처럼 생각합시다.》

의료일군들은 그 말에서 천근만근의 무게를 느끼였다. 사람들모두가 친형제로 사는 사회주의대가정에는 불행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한 녀성과 그의 가정에 비낀 그늘을 가셔주어야 할 임무가 다름아닌 자기들에게 지워져있다는 자각이 의료일군들의 가슴가슴을 세차게 높뛰게 하였다. 그런 속에 곧 구체적인 조직사업이 따라섰고 이어 치료가 진행되였다.

함흥시의 의료일군들이 수도의 한 녀성을 위해 뜨거운 정성을 바쳐가고있던 그 시각 주옥별동무의 가정에서는 강별이동무의 입원생활에 필요한 생활용품들을 마련하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그들의 발걸음은 매일 강별이동무의 침상곁에로 이어졌다. 이미 불구인 한 처녀를 업고다니며 치료를 시킨 경험이 있는 그들은 의료일군들을 도와 자체로 수십종의 약초도 구해왔고 밤을 지새우며 수법치료도 해주었다.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철따라 내의도 마련해주고 환자가 입맛을 잃을세라 끼니때마다 색다른 음식을 차려주며 궂은 시중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의 지성에 강별이동무는 자주 눈굽을 적시군 하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그들은 강별이동무가 사소한 걱정도 없이 치료에 전심하도록 하기 위해 가족들의 생활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고 물심량면의 지성을 바치였다.

의료일군들의 진정은 또 얼마나 뜨거웠던가.

그의 치료를 위해 가정에 보관하고있던 귀한 약재까지 아낌없이 바친 실장이며 밤새워 만든 닭곰을 가지고나와 안겨준 간호장…

이런 정성속에서 마침내 강별이동무의 다리에서 신경이 살아나게 되였다.

그것은 기적이였다. 소문없이 일어난 한 인간의 소생의 기적이였다. 그러나 의료일군들도, 강진혁, 주옥별동무들도 자기들이 한 일을 놀랍게 여기지도 않았고 자랑거리로도 생각지 않았다. 그저 기쁘기만 했고 삶이 보람차기만 하였다. 하기에 그들은 이 평범한 불구의 녀성이 뭐라고 그렇듯 극진한 정을 기울이며 숱한 고생을 사서 하는가고 강별이동무가 목메여 말할 때마다 이렇게 대답한것이다.

《동무의 가정에 이전처럼 웃음이 넘치고 동무가 하루빨리 일떠서서 애국의 한길을 꿋꿋이 걸을수만 있다면 우린 더 바랄것이 없습니다.》

* *

강별이동무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끝마치였다.

《지난 3년세월은 저에게 사회주의제도에 안겨사는 긍지를 깊이 새겨준 나날이였습니다. 그렇듯 고마운 제도를 위해 공민의 본분을 다하고싶었을뿐입니다.》

오늘도 강진혁, 주옥별동무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강별이동무를 위해 사랑과 정을 기울이고있다.

사는 곳과 일터는 서로 달라도 모든 사람들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받드는 하나의 숨결, 하나의 의지로 굳게 이어진 우리 사회의 대가정에서만 이런 아름다운 인간애, 동지애의 화폭이 펼쳐질수 있는것이다.

 

-함흥시 사포구역에서 사는 주옥별동무의 가정에서-

 

-모란봉구역 성북동에서 사는 강별이동무의 가정에서-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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