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11-17

주체111(2022)년 11월 17일 《기사》

 

불법무효의 사기협잡문서 《을사5조약》

 

지금으로부터 117년전인 1905년 11월 17일 일제는 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을사5조약》을 허위날조하는 불법무효의 날강도행위를 감행하였다.

이로 하여 조선의 국권이 일제에게 강탈당하고 우리 민족은 40여년간에 걸친 식민지노예의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하게 되였다.

《을사5조약》은 일제가 강도적인 방법으로 날조한것으로서 아무러한 법적효력도 가지지 못하는 사기협잡문서이다.

《을사5조약》이 불법무효의 허위문서로 되는것은 이《조약》이 강제성을 전제로 하였고 협박으로 실현되였다는것이다.

1905년 10월 일본정부는 조선에 대한《보호권확립실행에 관한 각의결정》이라는데서 조선을 식민지의 한 형태인 《보호국》으로 만들것을 기본목적으로 내세우고 《보호조약》체결을 위한 실무적절차와 함께 일본군대의 한성진입 및 주둔 등 군사적강권발동을 계획하였으며 지어 조선봉건왕조가 《조약》을 거절하는 경우 최후수단으로 조선에 대하여 보호권을 확립하였다는것을 일방적으로 공포할 무단적인 방법까지 내정하였다.

이에 따라 일제는 보병, 포병, 기병 등 무력을 조선봉건왕조의 수도 한성에 집결시키고 황궁을 포위한 상태에서 조약날조를 강박하기 위한 위협적인 군사연습까지 벌리였다.

 

황궁에 대한 포사격준비를 하는 일본침략군

 

왜왕의 특사인 이또 히로부미는 고종황제를 찾아가 저들이 강요하려는 조약의 내용을 설명하고 본안은 변동의 여지가 없는 확정안이며 따라서 거부하면 귀국의 지위가 조약을 체결한것보다 더 불리하게 되는 결과를 각오해야 한다고 위협하였다.

일본의 강박행위는 조약의 찬성여부를 묻는 대신들과의 협상에서 더욱 적라라하게 드러났다.

11월 16일 일본공사 하야시가 외부대신 박제순을, 이또는 그밖의 정부대신들을 각기 공사관과 숙소에 불러내여 조약체결을 강요하였으며 17일에는 어전회의에서 《조약》반대를 결정하고 나오는 대신들을 휴계실에 가두어놓고 다시 협의할것을 강요하였다.

이것은 명백히 국가대표들에 대한 협박이였다.

《을사5조약》은 합법적조약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갖추지 못한 허위문서이다.

그것은 당시 조약체결절차가 황제가 조약의 재가(군주제국가에서 임금이 결제하여 허가하는것), 반드시 외부, 의정부와 중추원의 자문에 의거하기로 되여있었으나 조약문의 제출과 심의절차에서 국제, 국내법의 요구를 심히 어기였으며 조약으로 성립되는데 필수적인 《형식적적법성》을 갖추지 못하였다.

우선 이 《조약》은 조인에 이르기까지의 절차를 심히 위반하였다.

고종황제는 이또와 여러차례 만난 자리에서 이러한 조약절차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또는 《귀국은 군주전제국가이기때문에 황제의 승인이면 된다.》고 강박해나섰으며 17일에는 전권대표의 위임장제시도, 조약문에 대한 대신들의 의견청취도 없이 찬성으로 《조약》이 가결되였다고 선포하고 조인을 강요하였다.

일반적으로 국가주권에 관한 조약에서는 형식적요건을 갖출것을 필수적요구로 하고있으며 이때문에 조선봉건정부는 고종황제로부터 대신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국제법의 요구에 맞는 국내법의 절차대로 할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무력을 배경으로 한 강권발동으로 이 정당한 요구를 일축해버리고 자유의사에 의한 합의도 없이 조인할것을 강박하였으니 여기에는 이른바 략식조약(간략하여 줄이는 방식의 조약)에서 필수적이라고 하는 《당사자간의 합의》라는것이 있을수도 없었다.

《을사5조약》은 《조인》이 강도적이였고 황제의 재가, 서명, 국새날인이 없는 비법문서이다.

 

황제의 수표와 옥새가 없는 불법허위문서 《을사5조약》  

 

조인할 때 쓰인 외부대신의 인장도 황제나 외부대신의 지시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가져온것이 아니라 훔쳐온것이였으며 외부대신의 서명도 위조된것이였다.

가장 엄중한것은 고종황제가 조인을 반대하였고 조약문에 《황제의 위임을 받아》라는 문구도, 황제의 옥새날인도 없다는것이다.

몇가지 사실만 보아도 《을사5조약》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강제로 조작하고 허위로 공포한 날치기사기협잡문서라는것을 잘 알수 있다.

하지만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열한번도 더 지난 오늘까지도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은 《을사5조약》의 합법성에 대해 운운하면서 조선에 대한 일제의 군사적강점통치를 합리화해보려고 어리석게 날뛰고있다.

백년, 천년의 세월이 흘렀다해도 절대로 지워버릴수도, 감소시킬수도 없는것이 바로 피로 얼룩진 일제의 조선침략사이다.

조선인민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죄과에 대해 사죄와 배상은커녕 대조선적대시정책을 더욱 악랄하게 실시하고있는데 대하여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하고있다.

과거죄행에 대한 성근한 사죄와 배상의 의지는 전혀 없이 오히려 나라의 자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우리 공화국의 정당한 국방력강화를 걸고들며 《자위대》무력의 선제타격권을 줴치며 재침의 열을 거리낌없이 내뿜고있다.

뿐만아니라 조선의 신성한 땅 독도가 《불법점령》되였다는 망발까지 늘여놓고있으며 일제식민지통치시기 강제징용, 징병피해자들의 후손들인 재일조선인자녀들을 고등학교지원대상에서 배제한것도 모자라 유치반어린이들에 대한 보육지원마저 완전거부하는것과 같은 로골적인 적대행위와 용납못할 비인도적폭거를 감행하고있다.

이는 과거 일제에 의해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당한 전체 조선민족의 치솟는 분노와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일제가《을사5조약》의 날조를 비롯하여 과거에 저지른 온갖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응당한 사죄와 배상을 한사코 회피하며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적대시정책에 계속 광분한다면 조선인민은 천백배의 보복을 안김으로써 천년숙적에 대한 피맺힌 원한을 풀고 또 풀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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