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6-07-03

주체105(2016)년 7월 3일 《로작》

 

 

        

미국에 있는 조국통일촉진회 회장과 한 담화

1981년 7월 3일

 

나는 선생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찾아 먼길을 온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며 선생의 조국방문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나는 오늘 선생과 같은 애국지사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수 있게 된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선생이 조국을 떠난지 몇해만에 평양에 왔습니까? 선생은 벌써 조국을 방문했어야 할것을 그랬습니다.

선생이 1936년에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갔으면 조국에 있을 때 우리가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하는 소식을 많이 들었으리라고 봅니다.

선생의 아버지 김선두목사에 대하여서는 그전에 우리 아버님과 손정도목사에게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잘 알고있습니다.

선생이 미국에 가서도 애국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하는데 나는 그에 대하여 매우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금 미국에 선생과 같은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이 있다고 하는데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가운데 애국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아버님께서도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을 묶어세워가지고 애국활동을 시작하시였습니다. 그때 평양숭실중학교출신들이 반일운동에 많이 참가하였습니다.

오늘의 평양은 해방전에 선생이 살고있을 때의 평양과는 전혀 다릅니다. 조선속담에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선생이 평양을 떠난지도 이제는 40여년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평양의 면모는 몰라보게 달라졌습니다.

일제때의 평양은 보잘것 없었으며 그나마 전쟁시기에 혹심하게 파괴되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전쟁기간 평화적주민들이 살고있는 평양에 무려 40여만개의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선생이 그때의 평양시전경을 찍은 사진을 보았으면 알겠지만 전쟁이 끝난 다음 평양시에는 성한 집이 한채도 남지 않았습니다. 평양시뿐아니라 원산, 함흥, 청진을 비롯하여 공화국북반부의 모든 도시와 마을들이 다 재더미로 되였습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나라를 이렇게 무참히 파괴하여놓고 전쟁이 끝나자 조선은 앞으로 100년이 걸려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떠벌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령토가 있고 인민이 있고 주권이 있고 당이 있는 이상 재더미우에서도 다시 일떠설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모두다 힘을 합쳐 부강한 조국을 건설하자고 전체 인민들에게 호소하였으며 인민들은 당의 호소를 높이 받들고 전후복구건설을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습니다. 대학생들도 낮에는 공부를 하고 밤에는 건설장에 나가 일하였습니다. 그때에는 기계가 없었으므로 대학생들이 삽으로 땅을 파고 등짐으로 흙을 져날라 청년거리를 비롯한 평양시안의 여러 거리들과 모란봉경기장을 건설하였습니다. 미제가 조선은 100년이 걸려도 일어서지 못할것이라고 떠벌였지만 우리 인민은 전후 매우 짧은 기간에 평양시를 비롯한 도시와 마을들을 새롭게 건설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속담에 사람은 하늘을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전후복구건설을 통하여 인민대중의 힘은 참으로 크다는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평양시가 짧은 기간에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설된데 대하여 감탄을 금치 못하고있으며 우리 인민을 높이 평가하고있습니다. 1977년에 유고슬라비아의 찌또대통령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는데 그는 평양시를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고나서 나에게 당신이 전쟁으로 다 파괴된 평양시를 20년 남짓한 기간에 이처럼 아름답고 웅장하게 건설해놓았으니 이제는 일을 그만하고 쉬여도 되지 않겠는가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우리는 아직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였으므로 일을 더 많이 하여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평양은 세계적으로도 자랑할만한 아름답고 웅장한 현대적도시로 되였습니다. 오늘의 평양에서 일제때의 모습은 찾아볼수 없습니다.

선생도 잘 알겠지만 일제식민지통치때에는 보통강일대를 토성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때 보통강일대의 주민들은 해마다 큰물피해를 입었으며 집이 없어 가마니를 둘러막고 한지에서 살았습니다. 우리는 나라가 해방된 이듬해에 보통강개수공사를 하여 큰물피해로부터 평양시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였으며 전후에 보통강일대를 유원지로 꾸렸습니다. 그리하여 지난날의 토성랑이 오늘은 근로자들이 문화휴식을 즐기는 훌륭한 유원지로 전변되였습니다.

선생이 이번에 보통문에 가보았는지 모르겠는데 3.1운동때 보통문앞에서 평양사람들이 일제놈들과 큰 싸움을 벌렸습니다. 선생은 평양에서 3.1운동에 직접 참가한것만큼 그때 체험한것을 가지고 글을 쓰는것이 좋겠습니다. 우리 인민들이 일제를 반대하여 투쟁한 력사적사실을 가지고 글을 잘 써놓으면 후대들을 교양하는데 큰 도움이 될것입니다.

우리 인민은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을 가지고 건설을 잘하고있을뿐아니라 거리와 마을을 깨끗이 거두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의 투쟁에 의하여 앞으로 평양은 더욱 아름답고 웅장하게 변모될것입니다.

오늘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가장 절박한 문제는 조국을 통일하는것입니다.

우리는 나라의 독립을 조국의 절반땅에서밖에 실현하지 못하였습니다. 남조선은 이름이 《대한민국》이지 실지에 있어서는 미국의 식민지입니다. 조선은 다른 나라의 예속국으로 되여서는 안되며 반드시 통일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나라의 절반땅에서 민족적자주권을 마저 회복하고 나라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반드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실현하여야 합니다. 조선인민이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면 사대주의를 철저히 반대하고 민족적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합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우리 나라는 큰 나라들로 둘러싸여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주변에는 일본이 있고 쏘련과 중국이 있으며 대양건너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는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민족적자주성을 견지하는것이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섭니다.

주체를 잃고 사대주의를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우리 나라가 리조말기에 망한것도 봉건통치배들이 큰 나라들을 등에 업고 사대주의를 하였기때문입니다. 그때 봉건통치배들은 친청파, 친일파, 친로파로 갈라져있었는데 친청파는 청나라에 굽신거리면서 청나라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으며 친일파는 일본을 등에 업고 일본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으며 친로파는 로씨야를 등에 업고 로씨야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 이렇게 봉건통치배들이 여러파로 갈라져 제가끔 큰 나라를 등에 업고 파벌싸움만 하다보니 우리 나라는 결국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되고말았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대주의를 해방후에도 나타났습니다.

해방후에는 지난날 일본을 숭배하던 사람들과 다른 나라에 가서 류학을 하고 온 사람들이 우리 사람들속에 사대주의를 퍼뜨렸습니다. 그리하여 사대주의는 문학예술부문을 비롯하여 여러 부문에서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내가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대의 어느 한 휴양소에 갔던 일이 있는데 그때 그 휴양소에는 흰눈이 덮인 씨비리수림속으로 곰이 기여다니는것을 그린 풍경화가 붙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함께 갔던 일군들에게 우리 나라에는 맑고 푸른 바다도 있고 금강산, 묘향산을 비롯하여 아름답고 경치좋은 산들도 많은데 왜 조선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붙이지 않는가고 말해주었습니다. 또 언제인가 어느 학교에 가보니 교실에 뿌슈낀, 마야꼽스끼와 같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진이 많이 걸려있기에 그 학교 교원들에게 우리 나라에는 애국명장들과 훌륭한 문학가들, 이름있는 실학자들도 많은데 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사진만 걸었는가, 그것이 우리 학생들을 교양하는데 무슨 의의가 있는가고 말해주었습니다.

한때 극장들에서는 프랑스가극 《까르멘》에서 나오는 노래나 챠이꼽스끼가 작곡한 다른 나라 노래를 많이 불렀으며 지어 일부 음악가들은 민족악기를 가지고는 현대음악을 연주할수 없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사대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빨리 발전시킬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기회에 우리 일군들에게 앞으로 공산주의가 전세계적범위에서 실현되여도 조선사람은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강산에서 살아야지 먼 다른 나라에 가서 살수야 없지 않은가, 그런데 무엇때문에 인민들을 자기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교양하지 않는가, 우리가 사대주의를 하면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줄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렸습니다. 우리는 문학예술분야에서 다른 나라의 작품만 내세우려는 경향을 철저히 없애고 민족문학예술을 적극 발전시키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는 조선사람의 감정에 맞고 인민적내용을 담은 민족음악을 기본으로 하여 음악을 발전시켰는데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의 음악작품을 감상하고 다 좋다고 합니다.

우리가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주체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계속 근기있게 벌려온 결과 우리 인민들속에서 점차 사대주의가 없어지고 민족적자부심과 자주의식이 높아졌습니다. 우리 인민은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승리를 이룩하고 전후복구건설을 잘한데 대하여 그리고 사회주의를 성과적으로 건설하여온데 대하여 커다란 민족적자부심을 가지고있습니다. 우리 인민은 이러한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하여 계속 투쟁하고있습니다.

남조선반동들은 우리 근로자들이 일하는것을 보고 강압에 못이겨 하는 강제로동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터무니없는 악선전입니다. 아무리 강압적으로 내몰아도 사람들이 일하기 싫으면 잠이나 자지 제대로 일하지 않습니다. 해방전에 일제놈들이 조선사람들을 강제로동에 내몰았지만 조선사람들가운데 제대로 일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사대주의를 철저히 반대할것이며 우리 인민들을 주체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고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 식으로 풀어나갈것입니다.

남북조선 전체 인민들이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고 굳게 단결하여 투쟁한다면 남조선에서 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조국을 통일할수 있습니다. 이란에서 미국세력을 내쫓고 파흐라비독재정권을 뒤집어엎을수 있은것도 인민들이 굳게 뭉쳐 투쟁하였기때문입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에서 물러가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할것입니다. 력사는 제국주의자들이 남의 나라를 영원히 식민지예속밑에 둘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세월이 오래 흐르면 반드시 변혁이 일어나는 법입니다.

문제는 남조선인민들이 숭미공미사상을 버리고 자주적인 사상을 가지는가 못가지는가 하는데 달려있습니다.

오늘 남조선인민들은 점차적으로 각성되여가고있습니다. 지난날에는 남조선인민들의 머리속에 숭미공미사상이 많았는데 점차 없어져가고있습니다. 남조선인민들은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을 무력으로 강점하고 식민지로 만들었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남조선에서 기독교인들도 빨리 각성되고있습니다. 남조선기독교인들가운데 미국에 갔다온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미국사회를 자기 눈으로 보고 그 부패성을 깨달은 사람들은 미국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특히 남조선청년학생들속에서 민족자주의식이 빨리 높아가고있습니다. 남조선청년학생들이 그전에는 미국사람들과 남조선당국자들의 악선전을 듣고 공화국북반부에 대하여 그릇되게 생각하였지만 우리가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점차 옳바른 인식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오늘 남조선청년학생들은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것이 아니라 남조선괴뢰정권을 반대하여 투쟁하고있습니다.

우리가 자주성을 견지한다는것을 알면 누구도 우리를 반대할수 없습니다.

해방직후에 있었던 사실을 하나 이야기하겠습니다.

해방직후 신의주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북조선이 쏘련의 식민지로 될것이라는 반동분자들의 악선전을 듣고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학생들이 반동분자들의 악선전을 듣고 우리 나라가 다시 다른 나라에 예속되지 않겠는가 하여 우려한것은 나쁘다고 볼수 없습니다.

나는 신의주에서 학생들이 소동을 일으켰다는 보고를 받고 인차 그곳에 가서 학생들과 시민들을 모여놓고 연설을 하였습니다. 나는 연설에서 해방된 조선이 나아갈 길을 밝히고 우리가 나가는 길은 조선민족의 리익에 맞는 민주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길이라는것과 우리의 민주주의는 미국식《민주주의》도 아니고 쏘련식민주주의도 아닌 조선식민주주의라는것을 말하였습니다. 내가 연설을 끝마치자 군중은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습니다.

나는 그 이튿날 청년학생들의 요청을 받고 신의주시의 교직원들과 학생들앞에서 또 연설을 하였습니다. 나는 연설에서 쏘련군대가 조선에 나온것은 우리와 함께 일본군대와 싸우기 위해서였는데 인차 돌아갈것이다, 새 민주조선은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 동무들은 나쁜 놈들의 악선전을 곧이 듣지 말라, 우리 나라는 절대로 다른 나라의 식민지로 되지 않을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내가 연설을 끝마치자 참가자들이 모두 일어나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였습니다.

내가 그때 신의주에 가기를 아주 잘하였습니다. 소동을 일으켰던 청년학생들은 우리가 예속의 길이 아니라 자주의 길로 나가고있다는것을 알고 우리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일을 잘하였습니다. 지금 그들가운데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술자로 된 사람도 있고 박사로 된 사람도 있으며 당, 정권기관에서 간부로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빨리 각성되여 모두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 떨쳐나서기를 바라고있습니다.

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미국사람들과 재미교포들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의 립장과 방안을 잘 해설해주는것이 좋겠습니다.

미국은 조선의 통일을 방해하는 주되는 세력입니다. 우리가 《남침》하려 하지 않는다는것을 이미 여러번 천명하였으나 미국사람들은 《남침위협》에 대하여 떠들면서 남조선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고있으며 우리 나라를 《두개 조선》으로 만들어 남조선을 영원히 강점하려 하고있습니다.

나는 지난해에 미국국회 하원의원 솔라즈가 우리 나라에 왔을 때 그에게 미국이 지금 우리 나라를 《두개 조선》으로 만들어 우리 민족을 영원히 갈라놓으려고 하는데 그렇게는 되지 않을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조선인민은 한피줄을 이어받으면서 몇천년동안 한강토우에서 살아온 단일민족입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을 어떻게 둘로 갈라놓을수 있겠습니까. 미국사람들이 아무리 우리 민족을 둘로 갈라놓으려고 하여도 우리 민족은 결코 갈라지지 않을것입니다.

선생도 잘 아는바와 같이 해방전에 일제놈들은 36년동안이나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있으면서 일본어를 《국어》라고 하고 조선사람들이 조선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며 조선사람들의 성까지 일본식으로 고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없애버리려고 이처럼 갖은 책동을 다하였으나 구경은 조선인민앞에 굴복하고 섬나라로 쫓겨가고말았습니다.

조선인민은 절대로 미국사람들의 노예로 되지 않을것이며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로 되지 않을것입니다.

나는 솔라즈에게 우리가 《남침》하려 하지 않는다는것을 명백히 말하여주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미국사람들이 우리가 《남침》하려 한다고 하는데 당신이 이번에 우리 나라에 와서 본바와 같이 우리는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 많은것을 건설해놓았다, 우리가 그것을 다시 재더미로 만들려고 전쟁을 일으키겠는가, 우리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사람들은 공연히 우리를 의심하면서 남조선에 군대를 계속 두고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카터가 선거공약에서 남조선에 있는 미군을 철거하겠다고 하였는데 대통령이 된 다음 왜 그것을 취소하였는지 리해할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지금 미국사람들은 카터가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거하지 않은것은 북조선의 군사력이 남조선보다 우세하기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리치에 맞지 않는 거짓말입니다. 지금 남조선에는 현대적무기로 무장한 4만여명의 미군과 70여만명의 괴뢰군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군대는 그렇게 많지 못하며 군사장비를 놓고보아도 우리자체로 만든 무기로 무장하고있습니다.

군사에 대한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군대가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방어하는 편에 비하여 2~3배이상의 력량을 가져야 한다는것을 알수 있을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남침위협》에 대하여 떠드는것은 남조선을 계속 강점하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북과 남이 련합하여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하는 방법으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통일된 조선은 그 어떤 나라의 위성국으로도 되지 않고 그 어떤 쁠럭에도 가담하지 않는 완전히 중립적인 자주독립국가로 될것입니다.

나는 또한 솔라즈에게 미국이 지난날 우리와 전쟁을 하였지만 오늘 조선의 통일을 도와나선다면 우리 나라와 미국과의 관계가 개선될수도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솔라즈는 나의 말이 다 옳다고 하였습니다.

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미국사람들과 재미교포들에게 우리에게는 《남침》할 의사가 없으며 조선은 통일된 다음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서 세계평화를 위하여 노력할것이라는것과 그렇기때문에 미국이 남조선을 군사기지로 가지고있을 필요가 없다는것을 잘 해설해주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미국사람들에게 앞으로 조선이 통일되여도 우리가 남조선에 사회주의제도를 강요하지 않을것이며 남조선에 있는 자본가들의 재산을 몰수하지 않을것이라는것도 잘 해설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을 창립한 다음 통일정부의 수반을 누가 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수 있는데 그것은 북과 남에서 륜번제로 할수 있을것입니다.

미국사람들에게 조선이 통일되여도 우리가 다른 나라들이 남조선에 투자한 자본을 다치지 않을것이라는것도 말하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다른 나라 사람들이 조선의 통일문제와 관련하여 신경을 많이 쓰는것이 바로 이 문제입니다.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보고에서 명백히 밝힌바와 같이 우리는 조국이 통일된 다음 남조선에 투자한 다른 나라의 자본을 다치지 않을것이며 그 리권에 손해를 주는 정책을 실시하지 않을것입니다.

나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서부독일의 한 학자를 만났을 때에도 이 문제에 대하여 말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조선이 통일된 다음 서부독일자본가들이 남조선에 투자한 자본을 침해하지 않을것이다, 우리는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서 다른 나라들과 거래를 가질것이다라고 하니 그는 우리의 립장을 찬성한다고 하면서 나의 말을 서부독일자본가들에게 전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미국사람들이 우리가 왜 남조선의 현 당국자와 회담을 하지 않는가고 하는데 우리는 그와 마주앉을수 없습니다. 그는 이전 독재자들도 감히 하지 못하던 야수적인 살인만행을 서슴없이 감행하여 한꺼번에 수천명의 광주시민들을 학살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와 마주앉아 회담을 한다면 그것은 남조선의 애국자들과 민주인사들을 배신하는 행위로 될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우리가 남조선당국자와 회담할수 없다면 누구와 회담할수 있겠는가고 물어볼수 있는데 우리는 남조선의 각 정당, 사회단체대표들, 해외에 있는 민주인사들과 조국통일문제를 가지고 협상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것이 가장 좋은 협상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남조선에서 군사파쑈분자들이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민주인사가 정권의 자리에 올라앉으면 그와 회담할수 있을것입니다.

선생이 나라의 통일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립장을 미국국회 의원들과 부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하는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이 그런 사업을 많이 하는것이 좋습니다.

선생이 미국에 돌아가면 인차 해외에 있는 교포인사들과 조국통일문제를 가지고 협의하겠다고 하는데 그것도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선생은 이번에 조국래왕의 길을 열어놓은것만큼 앞으로 자주 조국을 방문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선생이 다음번부터는 부인과 아들딸들을 데리고 조국을 방문하는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카터가 집권하고있을 때 미국에 있는 조선동포들이 조국으로 래왕할수 있다는것을 정식으로 발표하였기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할수 있을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선생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많이 노력하리라고 믿으면서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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