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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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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7월 15일 [전설]

 

대성산잉어못에 깃든 전설

 

평양시 대성산성안에 있던 99의 못들 가운데는 잉어못이라는 이름을 가진 못도 있다.

이 못이 잉어못이라는 특이한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먼 옛날 수십만의 북방오랑캐들이 고구려를 먹어보려고 지경을 넘어섰다.

용감한 고구려군민들은 도처에서 침략자들에게 맹렬한 반격을 가하였다. 특히 국경가까이에 위치한 한 산성에서 싸우던 고구려군사들은 적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뜻밖의 완강한 저항에 부닥친 적들은 어떻게 하나 이 성을 점령해보려고 무모한 공격을 거듭해보았으나 그때마다 많은 죽음만 내고 헛물을 켰다.

정면공격으로는 도저히 성을 빼앗을수없다는것을 깨달은 적장놈은 성에 대한 포위진을 겹겹이 치고 외부와의 련계를 차단하므로써 성안에서 식량과 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전술을 쓰기로 하였다.

일반적으로 성은 고립되여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물자가 보충되지 않으면 장기간 유지하기가 불가능하였다. 적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리였던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적들의 포위가 여러날 계속되자 성안에서는 식량과 물이 고갈되기 시작하였다.  고구려병사들은 나무껍질을 벗기고 풀뿌리를 캐먹으며 완강하게 뻗치였으나 포위가 한달 가까이 지속되면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쓰러지고 군사들의 사기와 전투력도 많이 떨어졌다.

이대로 가다간 파멸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똑똑한 방책을 찾지못하고 전전긍긍하는 성주의 생각은 천갈래만갈래였다.

이때 순찰을 돌던 관리가 여돌이라는 어린 군사를 체포하여왔다. 리유인즉 그가 성안에 있는 못에서 잉어 여섯마리를 잡았다는것이였다. 이 물고기로 말하면 성주가 비상수단으로 쓰려고 극비밀리에 보관하고있던것이였다.

그런데 어린 군사가 당돌하게도 그 물고기에 손을 대였던것이다.

《이놈. 네 일개 미천한 군사로 감히 잉어에 손을 대는고.네 죄책을 알겠는고?》

성주의 목소리는 추상같았다.

하지만 여돌이는 조금도 위축됨이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성주님. 제가 잉어를 잡은것은 먹자고 한것이 아니라 적군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원하기 위함이였소이다. 제가 잉어 여섯마리를 먹고 산대야 며칠이나 더 살겠소이까 .》

성주는 여돌이의 말에 하도 어이가 없어 크게 웃고나서 호통치기를

《이놈이 과연 맹랑한 놈이로다.이 성안에 많은 무사들과 지략이 능한 장군들이 있으면서도 물리치기 어려운 대적인즉 너같은 놈이 잉어여섯마리로 적을 물리치다니 과히 박장대소할 노릇이로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허튼 수작을 하느냐?》

그러나 여돌이는 조금도 떨지 않았다.

《병서도 많이 읽으시고 싸움도 많이 하신 성주님이시니 싸움이란 반드시 창이나 칼, 활로써만 승리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모르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옵니다. 잉어 여섯마리로 계책을 잘 쓰면 어찌 적을 물리치지 못하겠나이까.》

성주는 여돌이의 태도나 언행이 하도 당당하여 비위에 거슬리기는 했으나 그의 말을 들어보기로 하였다.

여돌이는 성주에게 자기의 계책을 루루이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성주는 그럴법하다고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여돌이에게 십여명의 호위병을 달아 적진에 보냈다.

적진에 도착한 여돌이는 적장앞에 잉어상자를 내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오늘 성주님의 다섯째아들 돌잔치를 큰 명절로 쇴소이다. 성주님께서 특별히 은혜를 베푸시여 군사들이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었나이다.

본래 인품이 높으신 성주님이라 비록 창칼을 맞대고 싸움을 하는 처지이지만 처자를 두고 멀리 타향에 와서 고생하는 장군을 생각하여 이 잉어를 보낸것이니 사양말고 받으소서.》

여돌의 말에 적장은 놀랐다.

한달가까이 포위되였으니 이제는 성안에서 떼죽음이 날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아직 그안에 이렇게 큰 잉어가 있다는것도 놀랍거니와 아들 생일잔치까지 벌려놓고 흥청댄다는것이 기이하였다.

그리고 잉어를 가지고 온 고구려의 젊은 군사의 태도와 몸가짐은 얼마나 의젓하고 도고한가.

성주의 다섯째 아들 돌잔치를 했다는것은 물론 그대로 믿을수 없는 말이라하더라도 자기에게 잉어를 보낸것은 필시 성주가 고구려군사를 굶겨죽이려고 꾀하였던 자기의 부질없는 계책을 조롱하는것이 아닌가.

적장은 심란하여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잉어를 어디에서 잡았는가고 여돌이에게 물었다.

여돌은 시치미를 떼고 도미강에서 잡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도미강에는 잉어가 얼마든지 있는데 산성과 도미강이 땅밑으로 통하고있어 물고기는 물론 식량도 얼마든지 날라 먹는다고 태연하게 말하였다.

산성안에 그런 시설이 되여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못했던 적장은 여돌의 말에 기절초풍하였다.

그리하여 적장놈은 그날 밤으로 군사를 거느리고 도망쳐갔다.

나라에서는 기발한 지혜로 적군을 물리치고 성을 구원한 여돌이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표창하였으며 수도성인 대성산성안에도 못을 파고 잉어를 기르게 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 못을 잉어못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잉어못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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