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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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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8월 10일 [소개]

 

《현대권투의 표본》으로 이름떨친 구영조

 

1955년 7월 17일 함경남도 함흥시의 평범한 로동자의 가정에서 출생한 구영조는 어려서부터 체육에 남다른 소질을 가지고있었다.

그는 12살때부터 권투를 배우기 시작하여 1972년 4월에 벌써 전국중학생 체육경기대회 권투경기에서 1위를 하였으며 17살때에는 48㎏급에서 국내선수권보유자로 되였다.

구영조는 1973년 4월 몽골에서 진행된 《체육신문상》쟁탈 국제권투경기대회 48kg급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쟁취하므로써 세계권투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권투강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후 구영조는 많은 국제경기들에서 철퇴와 같은 드센 주먹으로 조국의 영예를 떨치였다.

그는 1973년 이전 사회주의나라 안전일군권투경기대회 48kg급 1위, 1974년 제7차 아시아경기대회 권투경기 54kg급 1위, 1975년 제4차 금띠쟁탈국제권투경기대회 54kg급 1위, 1975년 친선군대권투경기대회 54kg급 1위, 1976년 제5차 금띠쟁탈국제권투경기대회 54kg급 1위, 1977년 이전 사회주의나라 안전일군권투경기대회 57kg급 1위 등 눈부신 경기성과를 이룩하였다.

구영조의 선수생활에서 절정을 이룬것은 1976년에 카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진행된 제21차 올림픽경기대회였다.

54kg급 권투경기에 출전한 구영조는 준준결승에서 타이선수를, 준결승에서 영련방선수권 보유자인 영국선수를 물리치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경기에서 미국선수와 맞다든 그는 조국이 안겨준 믿음과 담력으로 상대에게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련속 된매를 안김으로써 5:0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이로 미국선수를 타승하고 영예의 올림픽금메달을 들어올렸다.

 

드센 주먹으로 미국선수에게 련속강타를 안기는 구영조

 

선수생활기간 육체적준비가 좋고 드센 주먹과 완강한 투지, 세련된 기술을 소유한 구영조는 많은 경기들에서 상대방을 완전넘어뜨리기, 기술적차이로 타승하였으며 수십차례의 국제경기들에 참가하여 금메달 11개를 비롯한 많은 메달을 받았다.

출전하는 국제경기마다에서 조선인민의 불굴의 정신력과 높은 기술을 발휘하면서 승리의 탑을 높이 쌓은 그에게 세계권투계는 《백전백승하는 선수》, 《현대권투의 표본》이라고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어머니조국은 련이어 만리창공에 존엄높은 공화국기를 높이 휘날린 구영조에게 공훈체육인, 인민체육인의 명예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하여 많은 훈장과 메달을 수여하였다.

자랑스러운 선수생활을 마친후 그는 압록강체육단에서 감독으로 사업하면서 우수한 권투선수들을 수많이 키워내다가 2001년 3월 20일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갔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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