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ico                     

게시날자 : 2019-02-13

...목록으로
주체108(2019)년 2월 13일 [사화]

 

일본회화사의 첫 페지를 장식한 고구려의 화가

 

일본 법륭사의 금당에 그린 벽화는 조선의 경주 석굴암(돌굴형식의 절간으로서 조각으로 이름이 높다.), 중국의 운강석굴(불교석굴사원으로서 불상조각으로 유명하다.)과 함께 동양3대미술품의 하나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이 벽화는 동방미술사는 물론 세계미술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그림이다.

동양3대미술품들중에서 경주석굴암과 법륭사 벽화 두가지가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창조되였다는것은 참으로 자랑할만한 일이다.

금당벽화는 모두 12면인데 그가운데서도 6호벽면의 《아미타정토도》가 제일 우수하다.

벽화는 호분바탕에 연한 선으로 형태를 잡은 다음 색칠을 하였으며 마지막에 형태의 륜곽선을 다시 칠하여 완성하였다.

벽화의 세련된 선묘, 선명한 색채, 깊이있고 률동적이며 균형이 잡힌 조형미 등은 세월이 멀리 흘렀어도 많은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고있다.

이 훌륭한 미술작품은 고구려의 화가 담징에 의하여 창작되였다.

610년 중이며 화가인 담징은 배를 타고 왜나라로 건너갔다.

그것은 607년에 일떠선 법륭사의 금당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법륭사로 말하면 백제의 기술자들에 의하여 건설된 절건축물이다. 법륭사의 여러 건물가운데서도 금당은 가장 화려하고 예술성의 절정을 이루는 중심건물의 하나이다. 당시 이런 금당벽면에 벽화를 그리는 일만은 아무에게나 맡길수 없었다.

하여 왜나라에서는 고구려에 유능한 화가를 보내줄것을 청탁하였다.

고구려에서는 서른살전에 불교경전에 능통하고 미술은 물론 채색과 종이, 먹제조에서 뛰여난 기술을 가진 유명한 학자, 예술가, 기술자로 인정되였던 담징에게 이 일을 맡기였다.

왜나라에 도착한 담징은 사원의 체모에 어울리게 벽화를 완성해나갔다.

부처의 부드럽고 근엄한 얼굴표정, 아름답고 고결한 인상의 두 보살상, 입김으로 불어도 금시 하늘하늘 날릴듯싶은 얇은 옷자락, 그밑에서 살아 숨쉬는듯 한 생동한 육체의 모습…

풀색, 하늘색, 붉은 감색, 재색을 기본으로 하는 선명한 채색이 진한가 하면 연한듯도 하고 두꺼운가 하여 보면 투명한듯도 한 조화를 이루면서 화폭을 웅건한 세계에로 이끌어갔다.

담징이 그린 벽화를 본 사람들은 모든것을 잊어버리고 꿇어엎드리여 합장했다.

벽화는 그때로부터 천수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대로 보존되여있어 세계적인 보물로, 최고의 미술작품의 하나로 되고있다.

그러한 벽화가 1949년 법륭사가 불탈 때 소실되였다.

1968년에 일본의 수많은 일류급화가들이 모여앉아 원상대로 복구한 법륭사 금당벽에 소실된 부분의 벽화를 다시 그리였지만 그들자신도 원화보다 훨씬 못하다는것을 인정하고야말았다.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서 회화뿐아니라 과학기술발전에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채색법과 종이, 먹 그리고 물방아를 만들어쓰는 기술을 가르쳐주었다. 이러한 담징의 활동은 일본의 고대정사인 《일본서기》와 《법륭사전》에 기록되여있다.

담징의 뛰여난 학문과 기술, 회화술은 고구려의 과학문화발전수준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되돌이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