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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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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2월 17일 [소개]

 

우리 나라 고대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려옥

 

려옥은 기원전 5~4세기시기에 활동한 녀류음악가로서 가요창작가인 동시에 기악연주가였다.

그의 남편 곽리자고는 대동강나루의 배사공으로서 배로 사람들을 건네주면서 얼마간의 삯으로 생계를 겨우 유지해나갔다.

이러한 가난한 가정생활속에서도 려옥은 음악을 몹시 사랑하였고 항상 공후라는 악기를 타는것을 락으로 삼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으로부터 대동강물에 몸을 던져 죽은 백수광부의 참상과 그 안해가 공후를 타면서 지어 부른 《공무도하가》의 노래소리를 전해들은 려옥은 이날 강물에 빠져 죽은 그들부부를 불쌍히 여기면서 자기들도 역시 공후를 부둥켜안고 그 노래소리를 재현하여 《공후인》을 창작하였다.

그가 지어 부른 《공후인》은 듣는 사람마다 눈물없이는 들을수 없으리만치 슬프고도 애절한 곡조로 된 노래였다고 한다.

《공후인》의 음악은 전해오지 않아 잘 알수 없고 다만 한시로 번역된 가사만이 지금까지 전해오고있다.

 

강 건느지 말랬는데

왜 굳이 건느셨소

물에 빠져 죽었으니

님아, 이 일을 어이하오

 

 

고조선의 재능있는 녀류음악가 려옥의 창작연주활동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우선 고조선음악이 일찍부터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였다는것을 보여주고있는것이다.

고조선후기에 이미 민간의 평범한 녀성들속에서 가요가 창작되고 공후와 같은 민족현악기를 재치있게 타면서 노래부르는 독병창양식이 일반화되고있었다는것은 당시 동방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사실이였다.

려옥의 창작연주활동은 또한 우리 나라 민족음악발전에는 물론 당시 이웃나라의 음악발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옛 문헌기록에 의하면 려옥이 창작한 《공후인》과 그가 타던 고조선의 공후는 고대중국에 전해져서 《공무도하곡》, 《호공후》라는 이름으로 그 나라 사람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지고 연주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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