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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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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3월 25일 [소개]

 

평양에서 시작된 오곡농사

 

평양은 농경문화의 발생지이며 그 보급이 시작된 유서깊은 도시이다.

평양의 유구한 력사와 발전된 농경문화는 오곡농사를 짓기 시작한 력사가 매우 오랜것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오곡농사란 다섯가지 알곡작물을 재배하는 농사를 의미한다.

여러가지 알곡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대한 생태적특성을 파악하는것과 함께 필요한 농업기술수단과 농법이 안받침되여야 한다.

그런것만큼 오곡농사는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지배적, 창조적능력과 문화의 발전수준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된다.

평양에서 오곡농사를 지은 사실을 뚜렷히 확증하여주는 실물자료는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 남경유적 36호집자리에서 알려졌다.

 

남경유적

 

이 집자리를 발굴할 때 집자리의 한복판에서 직경 1m정도의 범위안에 불에 타서 숯으로 된 낟알이 흙과 함께 8~10cm정도의 두께로 묻혀져있었다. 낟알을 감정한 결과에 의하면 벼와 콩, 조, 수수, 기장이였다.

 

탄화된 벼

 

탄화된 기장

 

탄화된 수수

 

탄화된 콩

 

이 오곡은 종자로 쓰려고 천정같은 곳에 소중히 보관하였던것이 집이 불탈 때 방바닥우에 떨어져 묻혀진것으로 보아진다.

이 집자리는 B.C.4 000년기 말엽에 속하는 유적이다.

이 집자리보다 얼마간 늦은 시기에 속하는 석탄리유적(황해북도 송림시) 39호집자리에서 불에 탄 조와 팥이 발견되고 다른 유적들에서 벼와 콩이 발견된것을 보면 남경유적 36호집자리에서 발견된 오곡이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라는것을 알수 있다.

이처럼 B.C.4 000년기 말엽에 속하는 청동기시대의 집자리인 남경유적 36호집자리에서 오곡이 발견된것을 보면 이때에 오곡농사가 진행되였다는것을 능히 짐작할수 있다. 뿐만아니라 이 집자리에서 발견된 낟알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보면 평양에서 오곡농사가 시작된것이 훨씬 더 이른 시기부터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먼저 낟알들이 매우 고르롭게 형태화된 품종이라는것이다.

벼알을 놓고 실례를 들어보면 그것은 형태적특징에 의하여 짧은알종류와 긴알종류로 구분된다.

그런데 남경유적의 벼알들은 그 어느것이나 다 크기가 고르롭게 길이와 너비의 비례가 2배를 넘지 않는 짧은알종류이다.

다른 유적들에서 발견된 벼알들도 마찬가지이다.

작물들의 새 품종의 형성과 기후풍토적응으로 길들이는 과정은 짧은 기간에 이루어지는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것만큼 남경유적의 벼알들이 고르롭게 형태화된 품종이라는것은 이 지역에서 벼재배가 오래전부터 진행되여왔다는것을 말해주는것으로 된다.

남경유적에서 나온 오곡들은 그 생물학적특성과 생육조건이 서로 다른 작물들이다.

조와 기장, 콩과 같은 밭작물은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으면서도 추위에도 잘 견디지만 벼는 그것과는 반대이다. 내한성이 강한 작물들은 높고 건조한 지대에서 재배될수 있으나 벼와 수수와 같은 습지성작물들은 그런 지대에서는 재배하기 어렵다.

이처럼 생육조건이 서로 다른 여러가지 작물들이 재배된것을 보면 그에 알맞는 경작지들이 개간리용되였고 또 거름주기, 그루바꿈, 관계체계도입과 같은 발전된 농법들이 적용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미루어보아 평양일대에서 벼를 비롯한 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는 늦잡아도 B.C.4 000년기 중엽 즉 신석기시대 후기경부터라고 인정된다.

신석기시대 후기에 벌써 오곡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는것은 당시 농법이 매우 발전된 수준에 있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 평양에 태를 묻고 살아온 우리 선조들의 슬기와 재능을 엿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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