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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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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6월 14일 [상식]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의 성씨

 

우리 인민이 창조하고 발전시켜온 귀중한 민족문화유산가운데는 오랜 옛날부터 생겨나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성씨도 있다.

성씨란 아버지를 따라 이름앞에 붙이는 혈족에 의한 호칭으로서 같은 족의 혈통을 나타낸다.

성씨의 발생은 원시사회에서 같은 피줄끼리 집단을 이루고 공동로동, 공동생활을 하여온 생활방식에 뿌리를 두고있다.

성씨는 자기의 족과 다른 족을 구별할 목적에서 생겨났다.

우리 나라의 성은 고대를 거쳐 삼국시기에 이르러 많이 생겨났지만 그 초기에는 왕족들만 성을 가지고있었다.

삼국시기 왕족들의 성으로는 고구려의 고씨, 백제의 부여씨, 신라의 박씨, 석씨, 김씨가 있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출신지방이름을 성과 같이 쓰면서 혈통이나 지역적소속을 밝혔다.

그후 성씨는 왕들이 나라를 세우는데 공로를 세웠거나 자기의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 신하들에게 《하사》하는 형식으로 많이 생겨났는데 이것을 《사성》이라고 한다.

고구려의 사성으로는 극씨, 중실씨, 소실씨 등이 있었고 신라에는 리씨, 정씨, 손씨 등이 있었다.

삼국시기 중엽에 이르러 봉건귀족들속에서 스스로 성을 만들어 사용하게 되면서 적지 않은 성들이 생겨나게 되였고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에 이르러서는 성씨의 수가 보다 확대되였다.

우리 나라의 성은 고려시기에 들어서면서 더 확대되여 낮은 신분층을 제외한 백성들이 다 성을 쓰게 되였으며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신분제도에서 변화가 일어나면서 성이 없던 천민들도 대대적으로 성을 가지게 되였다.

성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되여감에 따라 혈연적련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속에서 같은 글자로 성씨를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한 오랜 력사를 가진 성들에서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갈래로 가지를 치는 현상도 생겨나게 되였다.

그리하여 이전처럼 성씨 하나만 가지고서는 혈연적관계를 정확히 구별하기 어렵게 되였는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본》이라는것이 생겨났다. 본은 가문의 시조가 태여난 고장이나 조상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고장을 말하는데 기록들에는 본관, 향관, 본적, 관적 등으로 표기되여있다.

여러 력사기록들에 의하면 우리 나라에 존재한 성은 근 500개나 되였는데 그중 200여개는 오랜 세월이 흐르는 과정에 이미 없어졌다.

우리 나라에서 제일 흔한 성으로는 예로부터 김씨, 리씨, 박씨, 최씨, 정씨 등을 꼽아왔다.

두 글자로 된 복성은 30개정도 있었는데 현재는 황보, 선우, 독고 등 10여개만 남아있다.

본도 거의 1만개나 있었는데 조선봉건왕조 말기에는 3 000여개정도로 줄어들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강한 성씨의식을 가지고있었다. 호적에는 반드시 본관을 적어넣어 아버지혈통을 밝히고 같은 성, 같은 본의 혼인을 금지하였으며 이름을 지을 때에는 항렬을 따지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성이 가문과 혈통을 표시하고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글자로 되여있어 성과 이름을 보고 소속가문과 몇대째의 사람인가를 알수 있게 되여있다.

또한 성이 가족전체를 대표하는 공동의 호칭이 아니라 남자측의 혈족관계를 표시하는것이므로 녀자들이 결혼을 하여도 유럽에서처럼 자기의 성을 버리고 남자의 성을 따르는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여있다.

우리 나라의 성씨는 오랜 력사적과정을 통하여 피줄을 중심으로 유지, 공고화되여왔기때문에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뉴대와 단결을 강화하는 기초로 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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