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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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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0월 1일 [소개]

우리 민족의 차문화력사

 

우리 나라는 차문화의 력사와 전통이 오랜 나라이다.

차문화라고 할 때에는 차나무의 재배와 차잎의 생산과 가공처리, 차그릇의 생산과 사용 등의 종합적개념을 말한다.

벌써 삼국시기에 지리산을 비롯한 많은 곳들에서 차나무들이 재배보급되였으며 고구려와 백제,신라사람들이 차를 마신 자료들이 《삼국사기》를 비롯한 력사자료들에 반영되여있다.

인간이 자연계의 차나무를 인공적으로 재배한 력사를 대체로 2 000년정도로 볼 때 삼국시기에 우리 인민이 차를 마셨다는 사실은 조선민족의 차문화가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는것을 말해준다.

발해와 후기신라에 와서도 차문화가 발전하였다.《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정신을 맑게 하는 기호음료로서의 차에 대한 수많은 자료가 수록되여있다.

차문화는 고려때 더욱 발전하였다. 고려때 차의 생산과 가공처리, 운반, 판매공급과 소비 등을 다방이라고 하는 중앙관청이 맡아보았다.

다방은 차집이라는 뜻이다. 다방은 국가적인 약국을 겸하기도 하였다. 그것은 차가 가지고있는 약효와 관련된다.

차는 예로부터 방광아픔, 붓기 등에 약효가 있다고 하였으며 오늘날에 와서는 동맥경화증과 고혈압, 심장비대를 비롯한 병치료에 효과가 크다.

다방은 국가의 중요한 장례식때에 쌀이나 천과 함께 많은 량의 차를 부조로 공급하군 하였는데 실례로 수십만의 외래침략군을 당당한 외교적담판으로 물리쳐 명성을 떨친 서희장군이 세상을 떠났을 때 봉건국가에서는 뇌원차 200각, 대차 10근을 부조로 보냈다고 한다.

고려에서는 모든 국가적행사때에 의례히 다례행사(차마시는 행사)를 선행시켰다. 고려의 차소비량은 대단히 많았는데 따라서 차생산단위인 차소촌의 규모도 매우 컸다.

차소촌은 차밭을 관리하는 단위인데 국가적인것과 민간급 그리고 사찰소유의것도 있어 여러 형식으로 운영되였다.

맛과 향기가 독특한 고려차의 성행을 한층 촉진시킨것은 우아한 고려자기의 생산과 리용이였다.

고려자기의 모양과 종류, 용도는 각이하고 다종다양하였는데 그중에서 차잔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차주전자, 차잎항아리, 차잔들가운데 우수한 창작품이 많아 고려의 차문화를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

고려의 차문화의 발전모습은 다른 나라들에도 널리 알려졌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조선사람들의 차마시는 풍습은 면면히 계속되였다.

이름난 학자였던 정약용이 자기가 직접 차나무를 가꾸면서 차의 진미를 맛본다고 하여 자기의 호를 다산(차나무산)이라고 하였다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세계적으로도 그 력사가 매우 오랜 조선민족의 차문화는 로동당시대에 절세위인들의 손길아래 더욱 활짝 꽃펴났다.

오늘 조선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사랑이 깃든 《은정차》인 강령홍차와 강령록차가 널리 보급되고있으며 차문화는 보다 높은 수준에서 발전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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