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10-22

주체110(2021)년 10월 22일 《상식》

 

장도

 

장도는 여러가지 장식을 한 작은 칼을 말한다.

지난날 우리 인민들은 장도를 허리띠에 주머니와 함께 차거나 옷고름에도 찼으며 주머니속에 넣어서도 찼다.

남자들이 허리에 작은 칼을 차고다니는 풍습은 이미 삼국시기에 있었다. 《한원》고려(고구려)기에 의하면 고구려에서는 남자들이 작은 칼과 숫돌을 차고다니였는데 왼쪽에는 숫돌을 차고 오른쪽에는 《오자도》를 찼다.

장도를 차는 풍습은 그후에도 계승되면서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는 장식적인 의의가 더 강조되여 장도의 집과 자루를 여러가지 재료로 만들어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장도는 칼자루와 칼집의 재료에 따라 은장도, 서장도, 참대장도, 대모장도, 흑각장도, 화리장도, 침향장도, 산호장도, 호박장도, 비취장도, 옥장도, 밀화장도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러왔다. 칼자루와 칼집재료는 여러가지였으나 칼날은 강철을 썼다. 칼자루와 칼집의 생김새에는 원통형, 을자형, 륙각형, 팔각형 등으로 된것이 있었다.

칼날의 한면에는 글자를 새긴것이 적지 않았으며 칼자루와 칼집에 십장생무늬와 그밖의 무늬들을 새긴것도 있었다.

장도는 주로 남자들의 치레거리로 리용되였지만 녀자들도 그것을 보신용 겸 치레거리로 찼다. 녀자들이 장도를 치레거리로 차는 경우에는 대체로 허리에 찼으나 보신용으로 찰 때에는 주머니속에 넣어찼다. 이로부터 치레용장도를 패도라고 하였고 보신용장도를 낭도라고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은장도를 많이 찼는데 다른 노리개들과 함께 차기도 하였으나 은장도 하나만을 차는 경우도 있었다.

녀자들이 차는 은장도는 길이가 짧고 곱게 장식한것이 특징이였다.

우리 인민들속에는 혼인을 축하하거나 어른이 된것을 계기로 장도를 기념으로 주는 풍습이 있었다. 여기에는 본인의 행복을 축원하며 온갖 불행에서 보호해주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장도를 기념으로 주는 풍습은 오늘도 남아있어 우리 시대에 새로 태여난 복받은 세쌍둥이 남자애들에게 기념품으로 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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