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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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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5월 12일 [기사]

오랜 옛날부터 소문난 조선종이

 

우리 나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자체의 특이한 방법으로 닥나무, 마 등의 식물섬유로 종이를 만들어 널리 사용하였다.

4세기의것으로 알려져있는 고구려 고국원왕의 릉(안악3호무덤)벽화에 글을 쓴 종이를 쥔 화상이 여러상 그려져있는데 이것은 당시 종이가 벌써 많이 보급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또한 5세기경에 고구려에서 만들어진 종이가 평양시 대성산성에서 발굴되였으며 모란봉기슭 대동강반에서는 금동투각장식품과 함께 질이 좋은 종이가 발굴되였다.

고구려에서 마섬유로 만든 종이는 매끈하고 균일한것으로 이름났는데610년에 화가이며 학자이며 기술자인 중 담징에 의하여 이 종이를 만드는 기술이 일본에 전해졌으며 일본에서의 종이생산은 이때로부터 시작되였다.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신라에서도 일찍부터 종이가 제조되였다.

고려시기에 와서 종이생산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11세기에는 닥나무를 원료로 한 질좋은 종이가 다른 나라에 수출되기도 하였다.

고려에서는 팔만대장경을 비롯한 서적출판사업과 수출로 종이의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닥나무재배와 민간제지업을 국가적으로 장려하였으며 관영제지공장을 설치하고 중앙과 전국각지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고려종이를 많이 생산하여 이웃나라들에 수출까지 하였다.

당시 송나라에서는 임금에게 바치는 종이로 고려종이를 썼다고 한다. 원나라에서는 불교경전의 편찬을 위해 한번에 고려종이 10만장을 수입해간 일도 있다고 한다.

고려의 종이생산기술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인쇄기술의 발명과 함께 더욱 발전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종이원료로 닥나무뿐아니라 참대, 솔잎, 이끼까지도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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