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1-14

주체110(2021)년 1월 14일 《참관지소개》

 

대동문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평양성의 동쪽문이다.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동문으로 평양성과 함께 6세기 중엽에 세워진 후 여러차례 보수개건되였다. 현재의 건물은 16세기말 임진조국전쟁때 불탄것을 1635년에 다시 지은것이다.

 

 

 

이 문은 대동강을 건너 남쪽으로 통하는 문으로서 평양성의 성문들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성문이였다.

대동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정교한 축대와 그우에 세운 문루로 이루어졌다.

문의 높이는 19m이다.

축대의 높이는 6.5m이며 그가운데에는 무지개모양의 나드는 문을 냈다. 축대는 평면상 네모서리를 바깥쪽으로 점차 넓혀서 힘을 잘 받을수 있게 하였다.

 

  

  

  

 

축대우에 세운 2층문루는 앞면 3간(15.91m), 옆면 3간(10.34m)이다. 1층 가운데간에만 1.5m높이에 널마루를 깔았다.

기둥은 모두 흘림기둥형식인데 네 모서리의 기둥은 다른것에 비하여 좀 굵고 높게 하면서도 안으로 약간 기울게 세워져있다. 이것은 건물의 균형을 바로잡는데서 효과적인 수법이다.

1층의 기둥은 2층의 기둥보다 더 굵고 높다. 1층의 바깥기둥은 안기둥중턱에 댄 퇴보(퇴기둥과 안기둥사이에 얹은 짧은 보)에 물리고 안기둥은 2층의 대들보와 중보를 직접 떠받들고있다. 2층의 바깥기둥은 1층 퇴보우에 세우고 대들보와 물려있다. 그리하여 건물안은 구조상 층을 가르지 않고 통칸으로 되였다.

1, 2층의 두공은 모두 3포식으로서 안팎의 포수가 다 같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환산하면 바깥 5포, 안 7포에 맞먹는 규모를 이루고있다.

대동문의 합각지붕은 마루선들과 지붕면이 그 어디서 보나 한결같이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을 이루고있어 매우 아름답다. 웃층지붕의 휘임선은 아래층지붕의 휘임선보다 좀더 심하고 처마의 깊이는 보통경우와는 달리 1층보다 낮은 2층에서 도리여 깊어 지붕의 경쾌감을 돋군다.

처마우에는 높은 조각술로 형상한 원숭이, 개, 인형 등의 잡상들이 있었으나 해방전 일제가 원숭이조각잡상을 략탈해갔으므로 오늘도 그 자리는 비여있다.

기둥에는 붉은색을 칠하고 두공, 대들보, 액방, 평판방, 서까래 등에는 여러가지 무늬와 색갈을 배합한 은은한 단청을 입혔다.

대동문의 안정감있는 겉모양, 장쾌한 지붕의 부드러운 물매와 깊숙한 처마, 두리기둥과 두공을 비롯한 견실한 구조적요소들, 류선형으로 다듬은 도리의 유순한 곡선, 화려한 단청 등은 우리 인민의 우수한 건축술과 민족건축형식들을 보여주는것이다.

문루의 1층과 2층에는 대동문이라고 쓴 현판과 읍호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읍호루란 문루에서 손을 드리워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올릴수 있는 다락이라는 뜻이다.

 

  

 

 

 

 

대동문은 평양성방어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임진조국전쟁때 우리 군사들은 대동문을 드나들면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 동평양쪽에 도사리고있던 왜적들을 불의에 기습하여 족치군 하였다.

대동문에는 위대한 수령님들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불멸의 령도사적이 깃들어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주체34(1945)년 10월 3일에 대동문을 현지지도하시였으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는 주체35(1946)년 7월 7일 함께 대동문을 돌아보시였다.

어버이주석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 대동문을 찾으시고 우리의 귀중한 력사유적이므로 잘 보존하며 근로자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꾸릴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대동문은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적들의 야수적폭격으로 혹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우리 당의 문화보존정책에 의하여 주체43(1954)년과 주체48(1959)년 두차례에 걸쳐 원상대로 복구되였다.

오늘 대동문은 평양의 오랜 력사를 자랑하면서 근로자들과 청소년학생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리용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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