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1-16

주체110(2021)년 1월 16일 《참관지소개》

 

련광정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루정이다.

고구려시기인 6세기 중엽에 처음 세우고 그후에 여러차례 고쳐지었다.

오늘 련광정이 서있는 자리는 고구려시기 평양성 내성의 동쪽장대터이다.

고려시기 평양성을 보수하여 서경으로 하면서 1111년 이 자리에 다시 루정을 세우고 이름을 《산수정》이라고 하였다.

그후 보수도 하고 조선봉건왕조시기인 1670년에 다시 세우기도 하면서 그 이름을 련광정이라고 고쳐부르게 되였다.

련광정에서는 년대가 서로 다른 글자새긴 기와가 20여종이나 발견되였다. 이것은 여러차례 보수하였음을 알수 있다.

련광정에는 경치가 하도 좋아 《천하제일강산》이란 현판까지 걸려있으며 예로부터 관서8경의 하나로 꼽혀왔다.

루정에 올라 앞을 바라보면 푸른 물이 유유히 흐르는 대동강이 한눈에 안겨오며 북쪽으로는 아름다운 모란봉과 깎아지른듯 한 청류벽, 비단천을 펼쳐놓은것 같은 릉라도 등이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져있다.

대동강으로 면한 남쪽채 기둥에는 고려시기의 시인 김황원이 대동강기슭의 부벽루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지은 《긴 성벽기슭으로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넓은벌 동쪽에는 점점이 산이 있네》라는 시구가 씌여있는 글씨판이 걸려있다.

련광정은 《제일루대》, 《만화루》등으로도 불리웠다.

현재의 련광정은 1670년에 다시 지은것이다.

련광정은 독특한 평면구조를 가졌다. 련광정은 ㄱ형으로 두개의 다락건물을 조금 빗겨 맞물려세운것처럼 되였다.

평면이 이렇게 된것은 그곳 지형조건에 맞게 건물을 배치하였기때문이다.

련광정은 대동강기슭에 쑥 내민 덕바위와 그곁에 있는 절벽우에 바싹 내밀어세워 주위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게 하였다.

련광정의 밑부분은 땅을 파서 돌을 깔고 그우에 주추돌을 놓은 다음 지면이 좀 높은 대동강쪽 바위우에는 큰 나무기둥을 받치고 서쪽의 낮은 곳에는 높이 약 1.4m 너비 0.56m의 네모돌기둥을 받쳐 수평을 잡았다. 그리고 그우에 다락을 세웠다.

루정의 남쪽채는 정면(동쪽) 3간(11.35m), 측면(남쪽) 3간(9.2m)이고 북쪽채는 정면(동쪽) 2간(6.15m), 측면(북쪽) 4간(11.02m)이다. 남쪽채의 11개 기둥은 높이 2.65m의 흘림기둥이고 북쪽채의 9개 기둥은 네모기둥이다.

남쪽채의 두공은 2익공바깥도리식이고 북쪽채는 단익공주도리식이다.

제공은 모두 꽃가지형이며 룡마루가 있는 두개의 합각지붕을 직각으로 어기쳐 맞물려놓은 련광정의 모습은 우아한 느낌을 준다.

다락에는 널마루를 전면에 깔고 남쪽에 10단의 넓은 돌계단을 놓아 오르내리게 하였다.

마루두리에는 란간을 둘렀다.

란간은 바깥기둥의 중심에서 78m밖으로 내다 돌렸는데 아담하게 조각한 닭의 다리 모양으로 생긴 기둥(계자각)을 세우고 로라로 련결시켰다.

옆에는 판자를 붙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바람구멍을 뚫어놓았다.

란간바깥 대동강벼랑에는 성벽을 쌓고 그우에 다시 담장을 쌓아 련광정을 둘러막았다.

본래 여기에는 성가퀴가 있었다.

남쪽채의 대들보는 길이 10.64m, 가로자름면이 68㎝×68㎝되는 굵직한것이다.

천정은 시원하게 열린 통천정을 기본으로 하고 일부 개소에만 소란반자를 댔다.

련광정에는 전반적으로 모루단청을 입혔다.

그리고 대들보같은데는 비단무늬를 화려하게 놓았다.

우수한 건축술을 보여주고있는 련광정에는 외래침략자들을 쳐물리친 우리 인민의 애국적투쟁이야기가 깃들어있다.

바로 이 련관정앞에서 임진조국전쟁때 김응서와 계월향(?-1592)이 기묘한 계책으로 왜적장수의 목을 베였다고 전해오고있다. 루정앞에는 계월향의 애국적소행을 찬양하여 세운 비가 있다.

련광정은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심한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에 인차 복구되여 오늘은 국보로 잘 보존되고있으며 근로자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되고있다.

련광정부근에는 대동문과 평양종을 비롯한 문화유적, 유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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