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1-19

주체110(2021)년 1월 19일 《참관지소개》

 

칠성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을밀대와 최승대는 전쟁때 외적을 감시하고 군사들을 지휘하던 장대였고 현무문과 칠성문은 성문이였습니다.》

칠성문은 평양시 중구역 경상동에 있는 평양성의 북쪽문이다. 6세기 중엽 고구려 평양성 내성의 북문으로 세워졌으며 현재의 문루는 1712년에 다시 지은것이다.

칠성문이란 하늘 북쪽에 있는 북두칠성에서 딴 이름으로서 북문이라는 뜻이다.

 

 

 

 

칠성문은 평양성의 북쪽성벽이 만수대등성이로 뻗어내려간 곳에 있어 방어에 편리한 성문이다. 게다가 칠성문은 구조가 묘하여 방어력을 훨씬 높일수 있게 되여있다.

칠성문은 남쪽과 북쪽에서 내려오는 량쪽성벽을 10m쯤 어기여 쌓고 그사이에 성문을 모로 배치하였으며 밖으로 내민 성벽을 좀더 삐여지게 하여 그것을 옹성으로 삼았다. 그리고 무지개모양의 문길안과 그앞에 급한 비탈길을 내여 오르내리기 힘들게 함으로써 성으로 올라오는 적들을 타격하는데 유리하게 만들었다.

성문의 축대는 따로 쌓지 않고 어기여 쌓아진 량쪽 성벽사이에 4각추형으로 다듬은 성돌로 선과 면을 맞추어 정연하게 쌓고 거기에 무지개모양의 문길을 내는 방법으로 구성하였다. 이는 고구려사람들이 산지대에 성문을 내는데서 흔히 쓰던 독특한 수법의 하나이다.

 

 

 

 

칠성문에는 우리 선조들의 용감한 반침략투쟁이야기가 깃들어있다.

임진조국전쟁때 왜적들에게 일시 강점되였던 평양성을 탈환하는 전투(1593년 1월)에서 우리 의병들과 애국적인민들은 제일먼저 칠성문으로 쳐들어가 경상골과 련광정일대에 도사리고있던 적군 1만여명을 섬멸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하여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칠성문을 《승리의 문》이라고 불렀다.

칠성문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께서 주체35(1946)년 3월 2일과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찾으신 뜻깊은 사적이 깃들어있다.

칠성문은 오늘 혁명의 수도 평양의 국보유적으로 잘 보존관리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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