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1-20

주체110(2021)년 1월 20일 《참관지소개》

 

보통문

 

평양시 중구역 보통문동에 있는 평양성 중성의 서문이다.

보통문은 6세기 중엽 고구려가 수도성인 평양성을 쌓을 때 함께 세웠다. 지금 있는 건물은 여러차례 보수개건되여오다가 1473년에 고쳐지은것이다.

 

 

 

 

보통문은 지금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성문들가운데서 제일 오랜것들중의 하나이다.

보통문은 고려시기에 광덕문이라고 불리웠으며 그후에는 아침해를 다시 볼수 있는 문이라는 뜻에서 우양관, 보통강반에 있다고 하여 보통문, 신비스러운 문이라고 하여 신문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웠다.

보통문에서 손님바래우기(보통송객)는 예로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알려져있었다.

보통문은 장중하면서도 균형이 째이였으며 고려의 건축양식이 많이 반영되여있다.

보통문은 화강석을 다듬어 쌓은 축대와 그우에 세운 2층 문루로 이루어졌다. 축대는 수평을 맞추어 돌을 쌓아올린것이 아니라 돌마다 층을 달리하여 서로 어긋나게 쌓음으로써 아름답게 보이면서도 견고성을 높이였다. 축대의 가운데에는 너비 4.4m, 높이 4.55m되는 무지개모양의 문길을 냈으며 문길 앞쪽에는 앞뒤에 쇠쪼각들을 줄지어 입힌 튼튼한 널문을 달았다. 지금도 널문과 그것을 잠그거나 멈추던 시설물이 남아있다.

보통문은 다른 성문들에 비하여 높이가 좀 낮고 또 1층 면적에 비하여 2층의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아 외형상 장중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보통문은 평양성 서북쪽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국방상 또는 교통상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삼국시기부터 매우 중요시되였다. 들보에는 18세기 말엽 능란한 재상으로 이름높았던 채제공이 평안도 관찰사가 되여 이 문을 고치고 락성할 때 써붙인 《보통문중건기》가 있다.

보통문에는 우리 인민들의 애국적투쟁사실도 깃들어있다.

임진조국전쟁때인 1598년 1월 8일 인민들과 군인들은 보통문으로 돌입하여 일시 주둔하고있던 적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고 평양성을 탈환하는데 기여하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때인 1952년 8월 적들의 야수적폭격으로 불길에 휩싸였을 때 평양시민들은 희생적으로 불을 끄고 이 유적을 살려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보통문은 훌륭한 건축술로 잘 지은 건물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귀중한 력사유적이므로 잘 보존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보통문은 오랜 력사의 도시 평양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서 국보로 잘 보존관리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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