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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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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7월 15일 [기사]

 

노래 《고향의 봄》

 

노래 《고향의 봄》!

부를수록 자기가 나서자란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유년시절을 돌이켜보게 하는 노래이다.

오늘 조국에서뿐만 아닌 해외동포들속에서도 즐겨부르고 사랑하는 노래 《고향의 봄》은 사람들속에서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부르는 노래의 하나로 되고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어떻게 되여 누구나 사랑하는 노래가 되였는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

주체52(1963)년 6월 9일이였다.

중학생또래의 처녀애들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해방전에 나온 류행가 《고향의 봄》이였는데 가사가 조금 틀리였다.

《꽃대궐? 꽃대궐이 무슨 말이니?》

그리고는 무엇이 그리도 우스운지 깔깔거리며 멀어져가는 처녀애들…

대학생들과 함께 가시던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생각깊은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시였다.

그러시다가 웃음어린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노래가 창작된지 오래고 구전으로 전해지다보니 가사가 조금씩 틀리지 않을수 없다. 이 노래는 부를수록 더 부르고싶고 들을수록 더 듣고싶다. 노래 《고향의 봄》은 바로 빼앗긴 조국과 짓밟힌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이 어린시절의 동심에 맞게 잘 형상되였다. …

대학생들은 저마끔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는듯 감개무량한 표정들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향수에 한껏 심취된 대학생들을 둘러보시며 노래 《고향의 봄》은 일제에게 고향을 빼앗기고 타향만리로 떠난 사람들속에서 고향을 련상시키고 고향을 불러보는 억제할수 없는 감정을 자아내고있다. 이 노래를 불러보며 정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가볼수 없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느꼈을것이다. 그래서 해방전 우리 인민들속에서 많이 불리워졌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삼천리조국강토가 일제에게 짓밟히고 온 나라가 피바다에 잠겼는데 노래 《고향의 봄》에서는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만발하고 내가에 수양버들이 춤추는 동리며 거기서 놀던 옛 시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만을 노래하는데 그치였다고, 그러나 1920년대말 우리 조국이 세계에 빛을 잃었던 암담한 시기에 조국과 고향에 대하여 절절하게 노래하였다는 점에서는 《고향의 봄》이 의의있는 작품이라고 하시며 《노래 〈고향의 봄〉은 시대적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명곡입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대학생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당시 누구나 노래 《고향의 봄》을 해방전의 류행가로 치부하면서 홀시하고있었다.

더우기 그것을 명곡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거세하고 조선민족자체를 말살하려고 악착하게 날뛰고있던 시기에 나라잃은 설음과 조국과 향토에 대한 사랑을 노래함으로써 인민들에게 민족의식을 북돋아주고 반일애국정신을 심어주는데 이바지한 작품들의 의의는 무시되지 말아야 한다고, 이러한 작품과 창작가들을 인민들이 잘 알도록 해야 한다고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주시였다.

그때로부터 류행가라는 오명을 쓰고 시대밖으로 밀려날번 했던 노래 《고향의 봄》은 인민의 사랑을 받는 명곡으로 다시 태여나게 되였다.

진정 한편의 노래에 깃든 사연이 말하여주듯 이 노래는 우리 민족에게 위인이 있어 명곡도 빛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깊이 새겨보게 하고있다.

최 동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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