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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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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9월 12일 [기사]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상한 과학적통찰력으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일찌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주체49(1960)년 9월 29일이였다.

이날 학생들은 조선력사강의에서 배운 내용을 가지고 토론을 하고있었는데 론쟁의 초점으로 된 문제는 우리 나라 력사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며칠전에 있은 조선력사강의에서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는 현재 발굴된 력사적근거자료가 없기때문에 정확한것을 알수 없다는 문제가 취급된것과 관련되여있었다.

그때까지 우리 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의 유적유물이 나온것이 없었다. 그런것으로 하여 일부 고고학자들은 우리 나라에는 구석기시대가 없었을것이라고 단정하고 구석기시대유물이 발굴된 이웃지역에서 구석기시대를 거친 사람들이 신석기시대에 우리 나라 지역으로 이주해와서 산것으로 보고있었다. 당시에 출판된 《조선사개요》라는 책에도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라고 인정되는 유적유물이 발견되지 못했다는것이 특별히 강조되여있었다.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는 단순한 학술상의 문제가 아니였다. 때문에 지난날 일제어용사가들이 조선사람의 조상을 신석기시대에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이주민들의 집단이였던것처럼 묘사하면서 조선에는 원래 구석기시대가 없었고 그때에는 이 땅에서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극성스레 설교하였던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일부 고고학자들은 일제어용사가들이 떠벌인 반동적주장의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데로부터 그것을 배격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하고있었다. 그렇다면 조선사람의 조상은 누구이며 조선의 력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였는가.

이렇듯 중대하고 심각한 구석기시대존재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명확한 해답을 주신분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구석기시대의 존재문제를 가지고 열띤 론쟁을 벌리는 학생들의 주장을 주의깊게 들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이 문제와 관련한 일부 학자들의 그릇된 주장에 대해 지적하시면서 우리 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있었는가 없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정확한 리해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체적립장에서 고찰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지난 시기 일부 학자들이 구석기시대존재문제와 관련하여 그릇된 주장을 내세우게 된 바탕에는 사대주의적관점이 놓여있었다. 일부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되지 못한 사실에 포로되여 저도 모르게 일제어용사가들의 주장에 말려들게 되였던것이다. 이러한 실정에서 사대주의적관점을 타파하고 주체를 확고히 세우는것은 구석기시대존재문제해명의 근본열쇠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아직 구석기시대의 유물을 발굴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없었다고 단정할수는 없다, 구석기시대유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발굴되였다,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들에서도 이미 구석기시대유적들이 많이 발굴되였는데 그가운데는 우리 선조들의 거주지역과 아주 가까이에 있는곳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유적들은 우리 나라와 가까운 주변지역들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것을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그런 조건에서 구석기시대사람들이 우리 나라 지역에서만 살지 않았다고 볼 근거는 없다, 또한 세계적으로 보아도 구석기시대유적들이 나온 지방들가운데 우리 나라와 자연지리적조건이 비슷한 곳이 많다, 이것은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으며 그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것을 말하여준다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아직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되지 않았을뿐이지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을것이라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확신에 넘친 말씀이 울려퍼지는 순간 학생들은 금방 눈앞이 환히 트이는것을 심장으로 느끼였다.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을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제를 민족주체적립장에서 보고대하시는 절세의 애국자만이 내놓으실수 있는 철의 주장이였다.

학생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에 새겨진 심원한 뜻을 새겨안으며 이제 머지 않아 우리 나라에서도 구석기시대유적이 발굴될것이라는 확신에 넘쳐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여 고대하던 그날은 왔다.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언을 확증해주는 구석기시대유적이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오늘의 라선시 굴포리)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52(1963)년 5월 3일 기쁜 소식을 학생들에게 남먼저 알려주시려고 아침 일찌기 대학에 나오시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교실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학생들을 정답게 둘러보시며 열정적인 어조로 얼마전에 우리 나라 고고학자들이 구석기시대유적을 발견하였다고,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을 발견한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유적발굴정형을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주시였다.

원래 굴포리에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집자리가 층층으로 겹놓인 유적이 있었기때문에 고고학자들은 몇해전부터 이 일대에서 발굴사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다가 신석기시대문화층밑에서 종전에 볼수 없었던 새로운 타제석기 한점을 발견하게 되였다. 학자들은 이것을 단서로 이 지층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발굴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 구석기시대사람들이 만들어쓰던 타제석기를 여러점 더 발견하게 되였다.

이렇게 발굴정형에 대해 들려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어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을 발견한것은 큰 의의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굴포리에서 발굴된 고고학적자료는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고 그때에 벌써 우리 나라 땅에서 사람들이 살고있었다는것을 말하여준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구석기시대유적의 첫 발견은 우리 나라에도 구석기시대가 있었을것이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언을 움직일수 없는 력사적사실로 확증해준 경이적인 사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흥분과 감격에 휩싸인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우리 나라 고고학자들이 구석기시대유적을 발견한것은 해방후 우리 나라 고고학계가 이룩한 가장 대표적인 성과의 하나라고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 성과에 토대하여 구석기시대문제를 보다 명백하고 폭넓게 해명할데 대한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굴포리에서 발견된 타제석기는 석기의 가공기술과 형태로 보아 구석기시대의 초기가 아니라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른 구석기시대의 유물이라고 인정되는것만큼 이 유적만 가지고 우리 나라 구석기시대 문제가 다 풀렸다고 말할수 없다, 우리는 굴포리의 구석기시대유적보다 더 오랜 유적과 유물을 찾아내야 하며 그래야 인류발생의 려명기에 우리 나라 땅에서도 사람이 생겨났으며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다는것을 더욱 뚜렷이 확증할수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고고학분야에서는 앞으로 땅속깊이에 묻혀있는 유적과 유물을 더 많이 찾아내여 우리 나라 력사의 유구성과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밝히는데 적극 이바지하여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후 우리 나라의 여러 곳에서 구석기시대유적들이 련이어 발견되였다. 주체55(1966)년에 평양시 상원군 흑우리에서 100만년 이전이라는 아득히 먼 구석기시대 전기유적인 검은모루유적이 발견되였고 뒤이어 평안남도 덕천시 승리산과 평양시 력포구역 대현동, 상원군 룡곡리 등지에서 구석기시대유적들이 련속 발굴되고 구석기시대사람들의 뼈화석들도 발굴되였다. 그리하여 구석기시대 초기부터 우리 나라 땅에서 사람들이 살았으며 우리 나라가 인류발생지의 하나였다는것이 뚜렷이 확증되였다.

이렇듯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와 비상한 과학적통찰력으로 자기의 옛 모습을 땅속깊이 묻어둔채 잠자고있던 태고적 구석기시대의 오랜 비밀을 예언하시고 과학적으로 밝혀낼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놓으신 위대한 스승이시다.

 

라선시 굴포리유적이 발굴된 장소 전경

 

굴포리유적에서 나온 석기들

 

굴포리유적에서 나온 석기 실측도

 

덕천 승리산유적이 발굴된 장소 전경

 

덕천사람 오른쪽아래턱 첫째큰어금이화석(웃면,측면,정면)

 

덕천사람 왼쪽웃턱 둘째큰어금이화석(웃면,측면,정면)

 

력포 대현동유적이 발굴된 장소 전경

 

력포사람 머리뼈화석

 

력포사람복원조각

 

력포대현동유적에서 나온 말아래턱뼈화석

 

상원군 검은모루유적이 발굴된 장소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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