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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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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11월 7일 [기사]

 

600년만에 빛을 본 보물

 

사람들은 단 한번의 걸음으로 600년동안 깊숙이 숨겨있던 보물을 찾아냈다고 하면 전설이나 신화로 여길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실재한것이다.

주체81(1992)년 5월 이른 새벽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개성에 있는 고려태조 왕건의 무덤을 몸소 찾으시였다.

곡절많은 이 나라의 력사와 더불어 세월의 풍파속에 시달려온 왕건의 무덤.

이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무덤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태조왕은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국가를 창건한 시조왕이다,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으로 하여 국력이 약해져서 릉을 잘 쓰지 못했을수 있으니 왕릉을 고증하고 시조왕의 무덤답게 훌륭하게 꾸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 소문도 없이 왕건의 무덤을 돌아보신 소식은 나래돋힌듯 온 나라에 전해졌다.

그런데 얼마후 개성시에 한 책임일군에게 웬 로인이 큰 귀중품함을 안고 찾아왔다.

《이 <보물>은 우리 왕씨가문의 하늘이신 어버이수령님께 드려주시우다.》

그 《보물》인즉 고색이 짙은 옥새와 족보였다.

고려태조 왕건왕의 옥새와 족보!

너무도 놀라운 사실이였다.

왕건가문이 올린 옥새와 족보를 보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고려태조인 왕건은 우리 나라에 첫 통일국가를 세운 사람이라고, 고려가 우리 나라 첫 통일국가였기때문에 자신께서는 통일된 우리 나라의 이름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으로 할데 대한 문제를 제기하였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왕건의 초상을 보니 아주 잘 생겼다고 하시며 왕건의 후손들이 남조선에도 있을수 있는데 우리가 왕건의 무덤을 돌아보았다는것을 알면 그들도 감격해할것이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개성왕씨족보>와 왕건이 쓰던 도장을 잘 보관하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사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왕건릉을 찾아주시지 않았더라면 고려태조 왕건의 옥새와 왕씨가문족보는 력사에서 영영 사라질번하였다.

돌이켜보면 반역적인 조선봉건왕조가 서자 고려 왕씨가문에 대한 피비린 참살이 감행되였던것이다. 그 사지판을 뚫고 어느 한 왕족이 자기 가문의 족보와 옥새를 품고 구사일생으로 송도장안을 벗어나게 되였다. 그는 깊은 산골에 숨어버렸다.

그때로부터 어언 600년세월이 흘렸다. 그리하여 100년도 여섯번이 바뀐 기나긴 세월 헤아릴수 없는 수난과 곡절속에서 왕건의 귀중한 옥새와 족보는 일개 가족의 가보로 깊이 잠겨있게 되였다.

그러나 위대한 주석님께서 왕건의 무덤을 찾아주시였다는 희한한 소식을 접했을 때 왕씨자손들의 감격은 하늘에 닿았다.

하여 왕건의 가문은 선조들의 마음까지 합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주석님께 감사를 드리였다.

《정말 우리 수령님은 하늘의 태양이십니다. 태조왕이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난대도 옥새를 희세의 위인께 삼가 드렸을것입니다.》

고려태조 왕건의 옥새와 족보가 600년세월이 흘러서야 마침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 바쳐졌다는 희한한 이야기는 이렇게 태여났다.

손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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