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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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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4월 16일 [기사]

 

최영옥이네 4형제이야기(2)

 

어버이김일성주석님께서는 그후에도 늘 최영옥이네 4형제에 대하여 뜨겁게 관심하시며 육친적인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주체50(1961)년 12월 31일 설맞이모임에 참가한 영옥이를 만나주신 그이께서는 형제들의 안부도 물어주시며 너희들은 로동당의 딸이라고, 공부를 잘하여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여러 계기들에 이들을 만나도 주시고 전국학생예술축전종합공연무대에 올라 공연하였을 때에는 남먼저 박수도 보내주시였다. 뿐만아니라 맏이 영숙이의 건강을 념려하시여 직접 료양치료를 받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으며 막내 영희가 앓는다는것을 아시고서는 사랑의 보약까지 보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최영옥이네 형제들을 알게되신 때로부터 7년세월이 흐른 주체56(1967)년 11월 30일이였다.

그이께서는 이날 또다시 영옥이네 4형제를 댁으로 부르시였다.

《아버지!》하고 목메여 부르며 달려오는 영옥이네 형제들을 한품에 안으신 그이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다들 얼굴이 불깃불깃한게 건강해졌다고 대단히 기뻐하시면서 량옆에 두명씩 껴안으시고 응접실에 들어서시였다.

모두들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데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영희는 처음왔지. 설날에랑 늘 만나기는 했지만.》라고 하시며 그에게 사과도 쥐여주시고 손수 사탕을 입에 넣어주기까지 하시였다. 그리고 자기네 학원에는 왜 안오시는가고 떼를 쓰는 영희의 어리광도 너그럽게 받아주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형제들을 둘러보시며 이제는 다들 컸는데 전도문제를 같이 의논하자고 불렀다고, 저마다 자기의 생각들이 있겠는데 좀 이야기해보라고 하시는것이였다.

그때 맏이 영숙이는 교원대학, 영옥이는 고등경공업학교 졸업학년, 영실이는 같은 학교 1학년, 막내 영희는 초등학원 중등반 3학년에서 공부하고있었다.

형제들의 희망과 소질, 취미 등에 대하여 자상히 료해하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먼저 영숙이는 사범대학 3학년에 편입하고 영옥이는 김일종합대학에서 공부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신 다음 영실이는 무엇을 하겠는가고 물으시였다.

생글생글 웃기만하던 영실이가 군대에 가겠다고 대답올리자 그이께서는 군대도 좋아. 남포혁명학원에 가면 군대가 될수있지.라고 하시였다. 이번에는 영희에게 너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고 물으시였다. 영희는 제꺽 저는 아버님이 하라는대로 하겠다고 대답을 올리였다.

그러자 주석님께서는 그럼 영희는 외국어를 시키자고 하시며 외국어학원에 보냈다가 외국어대학을 졸업하고…라고 하시다가 영희를 굽어보시며 우리 영희가 외국어를 잘만 하면 앞으로 나를 따라다니며 통역을 할지 아나?하시며 즐겁게 웃으시였다.

이날도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들 형제들과 함께 저녁식사도 하시고 영화도 보아주시였다.

밤이 어지간히 깊었는데 그이께서는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너희들은 어디가서나 공부를 잘하고 규률도 잘 지키며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여야 한다, 사로청생활도 잘하고 당에 들면 당생활도 모범적으로 해서 훌륭한 녀성혁명가가 되여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다가 언니 영숙이쪽으로 몸을 기울이시더니 동생들이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시고 네 나이가 이제는 스물셋이니 결혼문제가 제기되면 아버지에게 꼭 알리라고 거듭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갈때에는 현관밖에까지 따라나오시여 오래도록 서계시며 바래워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주석님의 말씀대로 영숙이는 사범대학에, 영옥이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영실이는 남포혁명학원(당시)에, 영희는 외국어학원에서 공부하게 되였다.

그때로부터 또다시 2년이 지난 주체58(1969)년 9월 8일이였다.

어느덧 사범대학을 졸업한 영숙이는 어버이주석님을 뵙고싶을 때마다 찾군하던 만경대고향집에 갔다가 칠골다리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그런데 큰길로 갑자기 여러대의 승용차들이 달려왔다.

영숙이는 급히 길옆에 비켜섰는데 승용차 한대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급히 멈춰서는것이였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가 그를 부르기에 다가가는데 차안에서 《너 영숙이 아니냐?》 하는 어버이주석님의 자애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나 뜻밖의 일이여서 영숙이는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였는데 그이께서는 너 어디에 갔댔는가, 지금 어데로 가는 길인가고 다정히 물으신 다음 기숙사에 간다는 대답을 들으시고서는 그럼 어서 올라라, 아버지하고 같이가자고 하시며 그의 팔을 이끌어 옆자리에 앉혀주시였다. 그리고 《너를 이렇게 만날줄이야, 길가에 서있는게 꼭 너같지 않겠니.》라고 하시며 졸업식을 언제했는가, 배치를 받았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이어 감개깊으신 어조로 영숙이가 벌써 대학을 졸업했단 말이지, 처음 만났을 때에는 조그마했는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다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어느덧 승용차는 보통벌에 들어섰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차에서 내려 뻐스를 타고 기숙사로 가겠다는 영숙이에게 집에 가서 의논할 일이 있다시며 함께 가자고 하시였다.

영숙이를 데리고 댁에 도착하신 그이께서는 이제는 기숙사밥을 그만 먹지 않겠는가, 집을 주면 살림을 하겠는가, 동생들도 그렇게 모여살았으면 하지 않는가고 물어주시였다. 그리고 영숙이와 함께 식사하실 때에는 집에 왔는데 뭘 어려워하는가고 하시며 찬그릇들을 그의 앞으로 밀어 주시였다.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신채 지금 몇살인가, 어데 봐둔 사람이 없는가고 다시 물어주시며 다 자란 딸자식의 장래를 념려하시듯 친아버지의 다심하신 사랑과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후 영옥이네 형제들은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친히 마련하여 주신 따사로운 보금자리, 새집에 모여 행복하게 살며 희망과 재능을 마음껏 꽃피우게 되였다.

예로부터 고아를 불행과 눈물의 대명사로 불러왔다.

하지만 최영옥이네 4형제는 자애로운 어버이 김일성주석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품속에서 세상에 부럼없는 복된 삶을 누려왔으며 백두산절세위인들만을 믿고 따르는 조선로동당의 참된 딸들로, 녀성혁명가들로 어였하게 성장하였다.

 

김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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