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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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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6월 10일 [회고록]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갈피에서

 

 

―6.10만세시위투쟁―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1권)에 《6.10만세시위투쟁은 3.1인민봉기후 민족해방투쟁무대에 새롭게 등장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직된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이였다.》라고 쓰시였다.

1926년 4월에 조선봉건왕조의 마지막왕이였던 순종이 사망하였다. 순종의 사망은 조선민족의 반일감정을 크게 건드려놓았다.

왕의 부고에 접한 조선사람들은 상복을 차려입고 남녀로소 할것없이 대성통곡하였다. 나라가 망한 다음에도 순종이 마지막왕으로서 조선봉건왕조를 상징하고있었는데 그마저 없어지니 쌓이고쌓였던 망국의 설음이 다시금 울음으로 폭발한것이다. 군악을 울리며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소리에 군중은 더욱 슬피 울었다.

 

잘 있거라 창덕궁아

영원히 무궁히

나는 간다 북망산천

쓸쓸한곳으로

인제 가면 언제나

또다시 오려나

2천만의 백의동포

무궁하여라

 

그 통곡소리가 일본강점자들에게는 폭탄과 같은 자극을 주었다.

조선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우는곳이 있으면 즉시에 일본기마경찰대가 출동하여 총칼과 곤봉을 휘둘러 야수적으로 해산시키였다. 소학교아이들까지도 가차없는 곤봉세례를 받았다. 나라가 망해도 슬퍼하지 말고 왕이 죽어도 울지 말고 입을 다물고있으라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단통치》로부터 《문화통치》로 탈바꿈을 한 총독정치의 진면모였다.

적들의 포악무도한 탄압만행은 불길처럼 타번지는 우리 인민의 반일감정에 기름을 쏟아붓는 격이 되였다.

공산주의자들은 인민대중의 반일기세에 편승하여 순종의 장례식날을 계기로 전국적범위에서 반일시위투쟁을 벌리기로 계획하고 그 준비를 비밀리에 추진시키였다.

그런데 그 비밀이 시위투쟁준비위원회에 끼여있던 종파분자들에 의하여 일제에게 알려졌다. 반일시위준비는 무자비한 탄압을 받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애국적인민들은 시위투쟁준비를 멈추지 않았다.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상여가 종로를 지나갈 때 수만명의 서울시민들이 《조선독립 만세!》, 《일본군대 물러가라!》, 《조선독립운동자들은 단결하라!》는 구호를 웨치면서 대중적인 시위를 벌리였다. 《문화통치》 7년간 쌓이고쌓인 원한과 울분이 마침내 《독립 만세!》의 함성으로 폭발한것이다.

열두어살안팎의 보통학교 학생들까지 대렬을 짓고 시위에 나섰다. 시위군중은 무장한 적의 군경들과 치렬한 격투를 벌리면서 용감하게 싸웠다.

6.10만세시위투쟁은 종파분자들의 책동으로 하여 일제의 야수적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부르죠아민족주의자들의 사대사상이 3.1인민봉기를 실패하게 한 근본원인의 하나라면 초기공산주의자들의 종파행위는 6.10만세시위투쟁을 말아먹은 기본화근이였다. 화요파는 이 투쟁을 지도하면서 저들의 종파적견지에서 조직사업을 하였고 서울파는 이에 대립하여 방해공작을 하였다.

6.10만세시위투쟁을 발단으로 조선공산당 지도부의 주요인물들은 대부분 검거되였다.

6.10만세사건을 계기로 《문화통치》의 기만성과 교활성은 만천하에 폭로되였다. 이 운동을 통하여 우리 인민은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반드시 나라를 되찾고 민족의 존엄을 고수하려는 불굴의 의지와 투쟁기세를 과시하였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이 파벌관념을 버리고 통일적으로 이 투쟁을 조직하고 지휘하였더라면 6.10만세운동은 거족적인 투쟁으로 확대발전되였을것이며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보다 큰 타격을 주었을것이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6.10만세운동은 종파를 극복함이 없이는 공산주의운동의 발전도 반일민족해방투쟁의 승리도 이룩할수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남기였다고 회고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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