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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8-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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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7(2018)년 7월 8일 [기사]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 갈피에서

 

 

《한울님》

 

지난 항일혁명투쟁시기 천도교 함경남도 도정이였던 박인진은 련공구국의 길에서 거대한 공적을 세운 사람이다. 

박인진은 1937년 10월 불행하게도《혜산사건》(1937년과 1938년에 압록강연안일대에서 감행된 조선의 혁명가들과 혁명적인민들에 대한 두차례의 대검거사건)의 여파로 일제경찰에 검속되였다.

박인진도정의 투쟁실적과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의 연고관계를 어렴풋하게 짐작한 적들은 집요하게 자백을 강요하였다.

네가 김일성빨찌산과 오래전부터 내통해오고있었다는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네가 국경량안에서 불온분자들을 규합하여 비밀결사들을 무어가지고 국체변혁을 실현하려 했다는것도 다 알고있다, 김일성장군한테서 무슨 지령을 받았고 너희 조직들이 어디어디에 분포되여있는가를 솔직히 말해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박인진은 입을 굳게 다물고있었다.

적들은 박인진의 지조와 의지를 굽힐수 없다는것을 알게 되자 천도교를 걸고들었다. 너희네 천도교에서는 사람우에 사람이 없고 사람아래에 사람이 없다고 하면서 사람이 곧 《한울님》이라고 한다는데 그렇다면 너희들이 하늘처럼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항일독립이라는 구실로 싸움마당에 마구 내몰아 헛되이 피를 흘리게 하는것은 도에 대한 이단이고 인륜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고 하였다.

그는 적들의 그 망발에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인륜을 모독하는것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이다. 너희들이 바로 우리 천도교의 종지를 짓밟은 장본인들이다. 네놈들은 수천수만명에 달하는 조선의 〈한울님〉들을 소나 돼지처럼 매일같이 도살장으로 끌어가고있지 않느냐. 군경들의 총칼이 번뜩이는곳에서 우리 백의민족의 피가 내와 강을 이루고 산 사람의 간장마저 원한에 썩고있다는것을 너희들은 알고있지 않느냐. 그렇다면 대답해보라. 죄는 누가 짓고 재판은 누가 받아야 하는것이냐? 우리는 조선국의 신성한 천도를 짓밟고 백성들을 무수히 살해한 강도들을 용서할수가 없다. 그리고 그 강도들이 불법적으로 조작해낸 국체라는것을 인정할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300만 교도는 2천만의 동포들과 함께 분연히 일어나 피의 항쟁을 하는것이다. 내 한몸의 피가 너희들의 제국을 불사르는 한점의 불꽃이 된다면 나는 죽어서 재가 된다해도 보람을 느낄것이다!》

그 불같은 성토에 원쑤들은 전률하였다. 악에 받친 적들은 늙은 도정에게 극악무도한 고문을 들이대여 그를 운신조차 할수 없는 페인으로 만들어버리였다. 중병까지 겹친 도정은 사경에 이르렀다.

박인진의 생명이 경각에 다달았다는것을 직감한 적들은 병보석의 명목으로 그를 가출옥시키였다.

그는 병석에서 1939년 봄을 맞이하였다. 림종을 앞둔 그는 한평생 남편의 뒤시중을 충실하게 해온 부인에게 혼신의 힘을 모아 말하였다.

《나는 죽음을 앞둔 이 시각에 행복을 느끼고있소. 그건 내가 수운대신사의 후대답게 인생말년을 값있게 결속했기때문이요. 이 박인진은 조선의 사나이로 태여났다가 조선의 사나이로 가오. 조국이 해방되면 당신은 아이들을 데리고 김일성장군을 따라가오.》

박인진이 운명직전에 이르렀다는 련락을 받고 그의 총애를 받던 한 제자가 침상곁으로 달려왔다. 도정은 그를 보자 평소에 자기가 즐겨부르던 《돈돌라리》를 불러달라고 하였다. 《돈돌라리》라는 제명은 《동틀날이 오리라.》는 말이 줄어지면서 붙은것이라고 한다. 일제침략자들을 구축하고 다시금 평화롭게 살 날이 동터올것이라는 신념이 구가된 노래였다.

충실한 제자는 스승의 부탁대로 《돈돌라리》를 부르기 시작했으나 목이 막혀 더 부르지 못하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박인진은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끝없이 흐느끼는 제자의 손목을 잡아쥐고 조용히 말하였다.

《김장군이 건재하고 혁명군이 백두산에 건재하는 한 우리 백의동포들은 반드시 동틀 날을 맞이하게 될거네. 자네들은 이제 백화가 만발하는 〈한울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걸세. 내 눈에는 그날이 환히 보이네. 암 보이구말구.》

천도교의 교리에 누구보다 밝고 신앙심이 깊은 박인진도정이 자기의 진정을 담아 숭배한 《한울님》은 위대한 주석님의 나라, 《한울님》의 나라는 인간사랑, 인민존중의 리념이 만발하는 백화처럼 활짝 피여난 인민의 새세상이였다. 

하기에 박인진도정의 부인도 위대한 주석님을 《한울님》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5권)에 이렇게 쓰시였다.

《해방후 나는 박인진도정이 생각날적마다 그의 미망인과 후손들을 찾아보군 하였다. 1992 여름에 항일혁명투사 유가족들과 만날 때에도 미망인이 90 넘도록 건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걷지 못하면 업어서라도 모셔오라고 일렀다.

도정의 늙은 미망인은 차에서 내리는 길로 누구의 등에도 업히지 않고 제발로 걸어서 앞으로 달려왔다. 그는 다른 유가족들처럼 나를 <장군님>이라든가 <수령님>이라는 말로 부르지 않고 <한울님>이라고 불렀다. 내가 그렇게 부르면 안된다고 해도 그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인진도정과 그의 부인이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한울님》으로 모신 진정은 단지 천도교인들의 마음만이 아니였다.

그것은 인민을 하늘로 떠받드는 위대한 인간에 대한 인민대중의 한결같은 칭송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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