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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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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4월 14일 [혁명일화]

 

명당자리로 옮겨진 마을

 

오늘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부락위치가 명당자리라고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곳 사람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이 찾아오면 의례히 《우리 마을터는 바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잡아주셨습니다.》라고 감격에 넘쳐 말하군 한다.

예로부터 조선사람들은 자기들의 살 집터와 마을자리를 좋은 곳에 잡는 풍습이 있었다.

집을 하나 지어도 양지쪽에 지었고 경치좋은 곳에 부락을 형성하였다.

그것은 집을 한번 짓고 살면 좀해서 다시 뜨게 되지 않고 그곳이 대대손손 살아갈 보금자리로 되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이 고장 사람들은 대대로 내려오면서 경치좋고 양지바른 산기슭이 아니라 바람 한점 막을수 없는 허허벌판 한가운데서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벌이 하도 넓다보니 산등성이에 집터를 잡고서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수 없기때문에 한여름 모기에게 물리우고 개구리울음소리에 잠들지 못하면서도, 웅뎅이의 물을 마시면서도 논밭근처에서 떠날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새 집을 지을 때에도 벌판가운데다 지었고 새 마을을 꾸려도 자기들이 살던 곳에 꾸리였다.

1949년 11월 이곳을 찾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벌판한가운데 널려져있는 집들을 산기슭에 옮겨 짓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부락위치까지 정해주시였다.

하건만 이 고장 사람들은 오래동안 굳어져온 낡은 인습을 버리지 못하고있었다.

10여년이 지난 후 또다시 이곳에 오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이 고장 사람들이 자기들이 살던 고장을 차마 뜨지 못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지난날 지주의 착취와 압박을 받으면서 살 때에는 모기가 물고 물이 나빠도 할수 없었지만 오늘은 인민이 정권을 쥐고있는데 왜 그렇게 살겠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부락을 건설하는것은 백년대계의 사업이므로 잘해야 한다고, 집터를 잘못 잡으면 후대들에게 욕을 먹을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후에도 오국리의 부락위치를 두고 늘 마음써오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주체63(1974)년 6월 마침내 이 문제를 확정지어주시였다.

오국리살림집건설사판을 보아주시면서 그이께서는 지시봉으로 부락이 형성될 곳을 가리키시며 이곳에 살림집을 짓고 널려져있는 살림집들을 다 옮겨야 하겠다고, 그래야 부락을 규모있게 정리할수 있으며 부침땅면적도 늘일수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낡은 사회가 남겨놓은 가난의 마지막 흔적마저 말끔히 가셔주시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친히 오국리의 건설주가 되시여 살림집들을 생활에 편리하게 조선식으로 짓도록 하시고 집집마다 수도물이 들어가도록 하시였으며 건설이 한창일 때에는 현지에 나오시여 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풀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뻐스와 화물차 그리고 1 000대의 자전거까지 보내주시였다.

정녕 부락위치까지 잡아주시고 부락건설을 백년대계의 사업으로 잘하도록 하신 위대한 주석님의 사랑과 은정속에 지난날 물우에 뜬 쪽박과도 같이 논 한복판의 오막살이초가집에서 귀떨어진 사발 몇개를 놓고 대대로 살아오던 오국리사람들은 드디여 경치좋고 살기 좋은 곳에 행복의 보금자리를 펴게 되였다.

오늘도 이곳 농민들은 모내기가 한창인 봄철에나 구수한 낟알향기가 풍기는 가을철에나 위대한 주석님의 그 은정을 전하며 해마다 농사를 더 잘 지어 쌀로써 사회주의강국건설에 이바지할 오직 한마음으로 포전에서 구슬땀을 바치며 일해나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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