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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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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5월 15일 [혁명일화]

 

이루어지지 못한 소원

 

주체95(2006)년 5월 9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새로 웅장화려하게 건설한 평양음악대학(당시)의 새 교사를 돌아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연혁소개실에 들리시였다.

연혁소개실에는 어버이주석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아래 대학이 걸어온 자랑찬 력사의 페지들이 사진자료들과 함께 전시되여있었다.

소개판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득 작곡가 김원균선생의 사진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다.

한동안 생각깊은 눈길로 사진을 바라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김원균은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지은 사람이라고 뜨겁게 회고하시면서 새로 건설된 음악대학에 그의 이름을 달아주자고 말씀하시였다.

(아니, 그럼 … 모시려고 했던 장군님의 존함은 ?! …)

일군들은 뜻밖의 말씀에 어리둥절해졌다.

물론 김원균은 우리 나라 음악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유명한 작곡가이다. 하지만 누구도 새로 완공된 대학에 그의 이름을 달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하였다.

나의 첫사랑은 음악이라고 하시며 일찍부터 문학예술전반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여 우리 조국을 20세기 문예부흥의 나라로 전변시키고 주체예술의 대화원을 가꾸어주신 음악의 거장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을 대학에 모시는것은 대학교직원들만이 아닌 온 나라 전체 인민의 한결같은 소망이였고 이미 기정사실로 되여있었다.

그래서인지 장군님께서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평양음악대학을 새롭게 건설하도록 해주신 때로부터 대학에 그이의 존함을 모실것을 요청하는 편지와 전화들이 해당 기관들에 끝없이 올라오고있었다.

한 책임일군이 그러한 사실에 대해 보고드리면서 온 나라 전체 인민이 대학에 위대한 장군님의 존함을 모시도록 하여줄것을 한결같이 소원하고있는데 허락하여주실것을 말씀올렸으며 음악대학 학장도, 동행하던 일군들모두도 꼭 그렇게 하여주실것을 간청드리였다.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음악대학명칭에 리면상선생의 이름을 달겠는가,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달겠는가 하는것을 많이 생각해보다가 아무래도 수령을 칭송하고 《애국가》를 제일 선참으로 창작한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다는것이 더 의의가 있다고 하시는것이였다.

그러니 인민들의 의사를 모은 일군들의 제의는 받아들이실수 없다는 뜻이였다.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애국가》를 창작한 김원균선생,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음악대학명칭에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다는것은 나라의 음악전통과 력사를 보여주는데도 의의가 있다고 하시면서 평양음악대학에 김원균선생의 이름을 다는 조건에서 대학에 그의 반신상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결국 인민의 간절한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평양음악대학에는 김원균선생의 이름이 달아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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