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19-06-16

주체108(2019) 년 6월 16일 《소개》

 

리인모

- (1917. 8. 24- 2007. 6. 16) 종군기자 -

 

  1930년 8월 12살때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께서 인솔하신 조선혁명군 무장소조의 파발리 내중경찰관주재소습격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김형권동지의 격동적인 연설을 들으면서 반일투쟁에 나설 결심을 다지였다. 1931년 8월 파발리에서 조직된 《적색독서회》에 망라되여 소년부책임자로 활동하였으며 1932년과 1933년에 《적색독서회》사건으로 두차례에 걸쳐 일제경찰에 체포되여 약 1년간의 감옥생활을 하였다. 그후 여러 지역에서 로동하면서 항일유격대를 찾기 위해 모색하는 한편 동지들을 규합하고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한 투쟁을 벌리였다. 1937년 7월과 1938년 9월에 풍산군(오늘의 김형권군) 파발리와  리포리에서 국내에 나와 활동하시던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만나뵙고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강화하며 적구에서의 활동을 령활하게 벌릴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았다. 1938년 7월부터 1940년 8월 기간에는 조국광복회 풍산지구혁명위원회 성원으로서 파발리분회와 황수원언제로동자돌격대, 안산후치령생산유격대 등의 조직들에서 정력적으로 활동하였으며 1940년 8월부터 1940년 12월 기간에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가지고 일본 도꾜에 건너가 풍산출신의 고학생들로 조직된 풍우동경고학생친목회를 혁명적으로 개편하였다. 그후 조선인민혁명군의 주요 공작대상의 하나였던 《서울콩그룹》에 조국광복회로선을 전달하고 서울의 운동권에 영향을 주었으며 서울지구의 금속, 방직, 섬유, 인쇄, 염색, 피복 등 여러 부문의 로동자들속에 깊이 들어가 로동계급의 선진분자들로 로조조직을 꾸리고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사업에 적극 참가하였다. 1941년 6월부터 풍산지구에서 전민항쟁준비사업을 하다가 8. 15해방을 맞이하였다. 1945년에 북조선공산당에 입당한 후 풍산군 안산면당 위원장, 풍산군당 선전부장을 거쳐 흥남시당 선전부장으로 사업하였으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조선인민군 종군기자로서 락동강계선까지 나가 활동하였다. 1950년 10월 전략상 일시적후퇴시기 지리산유격대에 들어가 피어린 적후투쟁을 벌리다가 1952년 1월 총상을 입고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광주포로수용소와 형무소를 거쳐 대전, 대구, 마포, 부산, 서울, 청주 등의 형무소로 옮겨지면서 34년간의 옥고를 치르는동안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언제나 마음의 기둥으로 삼고 그이의 전사답게 조선로동당원의 고귀한 칭호를 빛내이며 원쑤들의 온갖 유혹과 고문, 악형, 전향강요책동에도 굴하지 않았다. 1988년 10월에 페인의 몸으로 석방된 후에도 지리산빨찌산의 투쟁을 소개한 수기를 써서 남조선의 한 출판물에 게재함으로써 놈들의 가혹성과 야만성, 반동적인 남조선사회상을 온 민족과 세계의 량심앞에 고발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투철한 애국의지와 통일의 신념을 안고 변심없이 한생을 바쳐 싸운 불굴의 인간 리인모의 소식을 들으시고 그를 신념과 의지의 화신이라고 불러주시며 하루빨리 그를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송환해오도록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사랑과 은정에 의하여 그는 1993년 3월 19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겼으며  빠른 시일동안에 건강을 회복하게 되였다.

1993년 4월 15일에는 병원에 찾아오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뵙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최상의 영광을 지녔으며 입당당시의 당원증번호가 새겨지고 위대한 주석님께서 친히 수표하신 조선로동당 당원증을 받았다. 또한 전승 40돐에 즈음하여 진행된 전국로병대회와 1994년 새해 설맞이공연에 참가하여 또다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영광을 지니였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리인모를 조국의 장한 아들로 내세워주시며 그에게 안겨주실수 있는 모든 영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였다. 날과 달이 갈수록 더해만지는 뜨거운 어버이사랑과 크나큰 은덕을 받아안은 그는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를 모신 전사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깊이 깨닫게 되였으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 계시여 조국이 있고 자신의 가정도 있다는것을 절감하고 감사의 편지를 여러차례에 걸쳐 올리고 헌시 《나의 운명을 두고》, 《사랑에 대한 생각》, 《신념과 의지의 찬가》와 가사 《당신만 있으면 우리는 이긴다》도 써서 드리였다. 또한 당보 《로동신문》에 기사 《우리는 수령복이습니다》, 《우리 나라에 당복이 차넘칩니다》와 《우리 민족의 대행운은 장군복입니다》, 《우리는 태양복에 삽니다》 등을 집필하여 발표하였고 장편회상록 《신념과 나의 한생》(1996년)을 써서 출판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은정에 의하여 그가 공부하던 파발소학교가 리인모소학교로 명명되고 거기에 위대한 장군님의 친필비가 세워졌다. 공화국2중영웅칭호(1990년, 1997년)와 영예의 김일성훈장(1993년), 3. 1월간상(1993년),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기념훈장(1993년)을 비롯한 높은 국가표창과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2008년 7월 23일 평양의 통일거리에 조국통일상 금메달이 부각되여있는 화강석대돌우에 34년간의 옥중고초가 슴배여있는 수인복차림으로 철쇄에 묶인 두주먹을 억세게 틀어쥐고있는 리인모의 모습을 형상한 반신동상이 건립되였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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