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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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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8월 14일 [혁명일화]

 

부결하신 궁전설계

 

주체45(1956)년 1월에 채택된 내각결정 제7호에 따라 아동궁전설계가 완성된 어느날이였다.

궁전설계를 맡았던 설계가들은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 설계가들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자리에 앉혀주시였을 때에야 그들은 미처 인사도 드리지 못했음을 깨닫고 송구스러워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들이 펼쳐놓은 총설계도를 세심히 보아주시였다.

아동궁전으로 말하면 이미 새 조국건설시기에 어버이주석님께서 펼쳐주신 웅대한 구상에 따라 평양의 명당자리인 장대재에 건설하려다가 전쟁으로 하여 중단되였었다.

아직 나라가 전쟁의 상처도 가시지 못하였고 자재도 자금도 기술도 모자라던 때였지만 설계가들은 대담하게 창작적환상을 펼쳐 8 000여㎡에 달하는 궁전을 설계하였다.

그것은 전쟁전의 궁전규모보다 거의 2. 5배나 되는것이였다.

그들은 어버이주석님께서 너무 어벌이 크게 설계했다고 나무람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가슴을 조이며 궁전설계도에 대한 설명을 해드리였다.

그런데 총설계도에 대한 검토를 마치신 어버이주석님께서 탑부분의 세부설계도면을 유심히 살피시더니 깊은 생각에 잠기시여 방안을 천천히 거니시는것이였다.

설계가들의 마음은 저으기 긴장해졌다.

이윽고 설계가들에게 시선을 돌리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고 하시면서 매우 서운한 어조로 교시하시였다.

《그런데 너무 작아서 안됐소.…》

순간 설계가들은 놀라운 눈길로 어버이주석님의 모습을 우러렀다.

혹 잘못들은것 같아 자기들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자 어버이주석님께서는 팔을 들어 허공에 큰 획들을 그으시며 장차 장대재에 솟아오를 새 궁전의 웅장한 모습을 방불히 그려보이신 다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이름부터 궁전이 아니요!

장대재등에 그득 들어차게, 우리 나라의 왕인 어린이들이 살 궁전답게 크고 화려하게 다시 설계하시오!…》

설계일군들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

그날 건설부문, 교육부문 그리고 청소년과외교양부문 일군들의 협의회가 열리였다.

협의회참가자들은 후대들에 대한 어버이주석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하여 불같은 심정을 토로하면서 궁전규모를 종전의 근6배에 달하는 4만 7천여㎡로 정하는데 일치하게 합의를 보았다.

며칠후 궁전규모를 확정해주실데 대한 제의를 받으신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이제야 설계가들이 자신의 마음을 리해하여준다고 하시면서 궁전건평을 5만㎡로 정해주시였다.

그리하여 8천여㎡로 설계되였던 평양학생소년궁전은 연건평 5만㎡를 가진 대기념비적건축물로 다시 설계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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