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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날자 : 2019-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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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9월 9일 [기사]

 

국장, 국기도안창작가가 받아안은 사랑

 

공화국창건 30돐을 맞이하던 무렵이였다. 그때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전국적으로 국가표창사업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영광스러운 공화국의 30년의 력사와 더불어 뜨거운 애국의 열정을 바쳐온 수많은 로동자, 농민, 지식인들이 높은 훈장과 선물을 받아안고 감격에 넘쳐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계시였다. 이번 수훈사업에 혹 빠진 사람이 없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주체67(1978)년 9월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제기된 문건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자료에서 눈길을 멈추시였다.

공화국이 창건되던 시기 우리 나라의 국장과 국기도안창작에 참가하였던 한 미술가가 수훈명단에서 빠졌다는 자료였다.

그이께서는 선뜻 믿어지지 않으시였다. 자료를 다시 자자구구 따져보시는 그이의 마음은 참으로 무거우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체없이 해당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주변사람들이 가슴가득 훈장을 달고 흥성이고있을 때 눈물이 그렁하여 창밖만 내다보고있었을 그 미술가와 가족들의 무거운 마음이 맺혀오시는듯 한동안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일군들에게 빨리 그 미술가를 찾아 선물을 안겨줄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일군들은 머리를 들수 없었다. 우리 조국의 존엄과 위용, 우리 민족의 힘찬 기상과 창창한 미래가 담겨진 그토록 훌륭한 국장과 국기의 도안창작에 참가한 미술가의 이름도 행처도 모르고있은 자책이 가슴을 쳤다. 뿐만아니라 어떻게 그 미술가를 찾을수 있겠는지 방도가 선뜻 떠오르지 않아 난감해하였다.

그들의 속내를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제 30년전의 그 미술가를 찾아내자면 힘들수 있겠는데 누구에게 가보면 알수 있을것이라고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일군들은 즉시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 일군을 찾아가 그를 통하여 여러 연줄을 톺아보았다.

여러날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을 통하여 끝내는 그 미술가를 찾게 되였고 국장, 국기도안창작과 관련한 깊은 사연들을 상세히 알게 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공화국이 창건되기 한해전부터 그를 조선림시헌법제정위원회의 한 성원으로 내세워주시고 그에게 국장과 국기도안창작의 영예로운 과업을 주시였다는 사실, 주석님께서 우리 나라의 국장과 국기는 어느 나라것과도 다른 완전히 새롭고 조선적인것이 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는 사연, 당시 반당반혁명분자들이 얼빠진 주장을 내대며 공화국기의 흰 동그라미안에 보습을 그려넣으라고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벼이삭테두리를 한 국장도안에는 경복궁을 그려넣어야 한다고 책동하였다는 사실, 위대한 주석님과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세심한 지도에 의하여 원쑤들의 책동이 낱낱이 분쇄되고 우리 나라의 국장과 국기도안이 훌륭히 완성되였다는 이야기…

일군들로부터 그 미술가를 찾았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못내 기뻐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건국의 나날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뜻을 충직하게 받들었던 고령의 미술가에게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안겨주시였다.

이제는 손에서 붓을 놓은지도 오래되였고 중병으로 신고하던 백발의 로인은 봄빛을 받아 청춘의 활력을 되찾은듯 감격에 겨워 어쩔줄 몰라하였다.

오래동안 같은 인민반에 살면서도 옛 미술가의 공적을 전혀 모르고있던 사람들은 놀라움과 부러움의 눈길로 행복에 넘쳐있는 그를 보며 격정을 금치 못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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