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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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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3월 16일 [기사]

 

조국과 인민을 알게 한 천리길

 

해마다 3월이 오면 우리 조국인민들은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배움의 천리길을 걸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잊지 못할 94년전의 나날을 가슴뜨겁게 돌이켜본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수령님과 같이 어리신 나이에 애국의 큰뜻을 품으시고 투쟁의 길에 나선 혁명의 지도자는 력사에서 찾아볼수 없습니다.

배움의 천리길.

조국인민 누구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새겨져있는 길이다.

돌이켜보면 배움의 천리길은 위대한 주석님으로 하여금 식민지조선의 현실을 페부로 체험하게 하시고 혁명의 길로 떠밀어준 위대한 힘이였다.

주체12(1923)년 3월 16일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선에서 태여난 남아라면 마땅히 조선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 아버님의 뜻을 받드시여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단신으로 배움의 천리길에 나서시였다.

단정한 학생복차림에 강반석어머님께서 밤새워 지으신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어리신 주석님께서 가지고 가시는 짐이란 고작 자그마한 보꾸레미가 전부였다.

그속에는 조선력사와 지리책, 몇권의 학습장 그리고 옷 한벌이 들어있었다. 부모님이 마련해준 려비조차도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주석님의 심장속에 뜨겁게 고패친것은 바로 이 길이 선조들의 뼈가 묻혀있고 태를 묻은 조국으로 가는 길이고 장차 조국해방의 격전장으로 이어질 력사의 길이라는 철석의 신념과 의지였다.

천고의 수림과 눈보라 휘몰아치는 령, 키를 넘는 눈길을 헤쳐야 하는 천리길은 어리신 주석님께 있어서 참으로 멀고도 힘겨운 길이였다.

세찬 눈보라에 거목들이 넘어지는 소리가 그칠새 없었고 때로는 맹수가 길목에서 어슬렁거리는 위험지대도 있었다. 그러나 모진 추위와 사나운 짐승, 눈덮인 험한 산악도 겨레의 운명을 생각하시는 주석님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지 못하였다.

조선에 나가서 우리 나라가 왜 망했는가 하는것만 똑똑히 알아도 그것은 큰 소득이라고, 고향에 나가서 우리 인민이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있는가를 체험하면 자기 할바를 잘 알게 될것이라고 하신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의 간곡한 당부가 위대한 주석님의 발걸음을 순간도 지체할수 없게 하였던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천리길에서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별의별 시련과 고생을 다 겪으셨지만 그보다도 길가에서 보신 류랑민들과 조국산천의 눈물겨운 현실이 못견디게 참기 어려우시였다.

나라의 귀중한 재부를 제멋대로 강탈해가는 침략자들과 하루하루 목숨을 겨우 유지하며 고역에 시달리는 로동자들, 더우기 한창 배울 나이에 헐벗은 몸으로 오소리굴같은 갱속에서 광석을 져나르는 소년로동자들, 산간오지의 오막살이에서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기막힌 생활처지…

조국땅 그 어디서나 보이는것은 수난속에 허덕이는 겨레의 모습이였고 인민들의 원한서린 한숨소리뿐이였다.

이 모든것을 목격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슴속에서는 삼천리강산을 비참한 인간생지옥으로 만든 강도 일제에게 복수의 철추를 안기리라는 억척의 맹세가 세차게 끓어번지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팔도구를 떠나신 때로부터 열나흘째 되는 날의 해질무렵 마침내 오매에도 그리시던 고향 만경대에 도착하시였다.

그때 할머님이신 리보익녀사께서는 너무도 어리신 나이에 멀고 험한 천리길을 걸어오신 위대한 주석님을 버선발로 뛰여나와 맞이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조국에 나와 보내신 두해동안에 많은것을 배우고 체험하시였다.

그때를 회고하시여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나에게 있어서는 그 천리길이 조국을 알게 하고 우리 인민을 알게 해준 하나의 큰 학교였다라고 쓰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주석님께서 걸으신 배움의 천리길은 조국을 잘 알며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일제를 때려부시고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원대한 뜻을 키우신 애국의 길, 혁명의 천리길이였다.

리 원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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