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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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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5월 8일 [회고록]

 

위대한 주석님의 회고록에서 배운다

-반제청년동맹지부조직-

 

 

중국동북지방에 있는 길림육문중학교에 적을 두신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교하지방에도 반제청년동맹지부를 조직하시였다.

그이께서 교하의 청년들과 인연을 맺게 되신것은 려신청년회 조직부장 강명근을 만나신 다음부터였다. 이 사람이 아마 독립운동자의 한사람이였던 장철호한테서 주석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모양이였다. 교하로 말하면 장철호의 중간정류소와도 같은 곳이였다. 그는 길림과 무송사이를 왔다갔다할 때마다 교하에 있는 강명근네 집에 들려 길림의 청년학생운동에 대하여 전해주고 길림에 돌아와서는 교하의 소식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이렇게 되여 강명근이 위대한 주석님을 알게 되였고 주석님께서도 교하지방의 청년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시였다. 바로 그런 때에 강명근이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려고 길림으로 찾아왔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장철호네 집에서 학교를 다닐 때였다.

위대한 주석님보다 나이가 열살이상이나 더 든 사람이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자기가 겪고있는 사업상 고충을 세부에 이르기까지 다 털어놓고 안타깝게 방조를 호소할 때 주석님께서는 그에 대한 동정을 금할수 없으시였으며 길림에서 180리나 떨어져있는 교하에서 보통중학생에 지나지 않는 주석님한테까지 찾아온 그의 혁명가다운 열정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당시 교하현에서는 랍법산을 경계로 서북쪽에서 려신청년회가 활동하고 동남쪽에서는 랍법청년회가 활동하였다. 교하일대의 조선청년들은 대체로 이 두 청년단체에 망라되여있었다.

청년들은 처음에 큰뜻을 품고 조직에 들었지만 자리다툼이나 하고 군자금이나 거두어들이는 민족주의운동지도자들의 소행에 점차 환멸을 느끼게 되였다.

그와 동시에 《프로레타리아혁명》과 《헤게모니》에 대하여서만 요란스럽게 떠들며 돌아치는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의 빈말공부에도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갈길을 찾지 못해 좌왕우왕하게 된다는 강명근의 그 심정이 리해되고도 남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길림일대에서 벌어지고있는 청년학생운동의 실태와 활동경험을 강명근에게 소개하시였다.

그리고 교하에 돌아가면 반제청년동맹지부를 내올수 있게 준비를 잘해보라고 하시면서 돌아갈 때에는 여러권의 맑스ㅡ레닌주의서적도 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성의를 다하여 깨우쳐주느라고 하시였지만 강명근이 돌아간 다음 교하의 일이 마음놓이지 않으시였다.

주체17(1928)년 봄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로일령을 넘어 교하땅으로 찾아가시였다.

강명근은 위대한 주석님을 뵙자 그러지 않아도 길림에 한번 다시 찾아갈 생각이였다고 하면서 여간 반가와하지 않았다. 그가 하는 말이 길림에서는 막힐것이 없을것 같았는데 정작 돌아와서 일을 하려고보니 걸리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라는것이였다.

교하의 농촌청년들은 우선 조직을 어떻게 내오겠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다. 어떤 청년들은 려신청년회가 민족주의자들의 조직이기때문에 당장 거기서 나와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끼리 반제청년동맹을 뭇자고 하였으며 어떤 청년들은 려신청년회를 무작정 해산해치우자고 하였다.

조직에 어떤 사람들을 받아들이겠는가 하는 문제에서도 그들은 옳바른 견해를 세우지 못하고 누구는 《적대분자》이고 누구는 《동요분자》이기때문에 조직성원이 되기 곤난하다는 식으로 웬만한 청년들은 미리부터 다 대상에서 제껴놓고있었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날 마실방에서 목침을 베시고 그들과 같이 한자리에 누으시여 조직을 내오려면 군중을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쟁취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람들을 이편저편 가르기전에 꾸준하게 교양하고 설복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시였다.

청년들이 민족주의자들과 종파분자들의 물을 먹지 않게 만들며 려신청년회와 랍법청년회안에 있는 선진적인 핵심청년들의 역할을 높여야 한다는데 대하여서도 말해주시고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토론해주시였다.

이렇게 하신 다음 려신청년회에 망라되여있는 5명의 핵심청년들을 선발하여 교하반제청년동맹지부를 무어주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후에도 교하지방에 자주 나가시여 반제청년동맹성원들과 사업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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