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01-22

주체110(2021)년 1월 22일 《상식》

 

《광복의 천리길》

 

《광복의 천리길》은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14살 어리신 나이에 조국해방의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단신으로 걸으신 고향 만경대로부터 팔도구에 이르는 천여리의 력사적인 로정이다.

오늘의 평양시 만경대구역 만경대로부터 평안남도 개천, 평안북도 구장, 향산, 자강도 희천, 청운, 고인, 전천, 성간, 강계, 흑수, 화평, 량강도 월탄리, 포평, 중국 동북지방의 장백현 팔도구까지이다.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의 높은 뜻을 받드시고 주체12(1923)년 3월 배움의 천리길을 걸어오시여 칠골의 창덕학교에서 공부하시던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어느날 아버님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또다시 일제경찰에 체포되시였다는 소식을 받으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아버지의 원쑤, 일가의 원쑤, 조선민족의 원쑤인 일제와의 사생결단의 각오, 김형직선생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나라찾는 투쟁에 나설 굳은 결심을 다지시며 주체14(1925)년 1월 22일 고향 만경대를 떠나 《광복의 천리길》에 오르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평양-개천사이는 기차로 가시였으나 구장, 희천을 지나 명문고개를 넘으시고 강계, 화평을 거치는 사이 그리고 높고 험한 오가산령을 넘으시여 포평에 이르시는 사이에는 줄곧 깊은 생눈길을 헤치시며 걸어야 하셨다. 거기에다 눈보라와 강추위를 이겨내시면서 천고의 밀림을 홀몸으로 헤쳐나가야 하셨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만경대를 떠나신지 열사흘만에 량강도 김형직군(당시 평안북도 후창군) 포평땅에 이르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눈덮인 압록강기슭에 서시여 아픈 마음을 금치 못하시며 조국산천을 돌아보시며 오늘은 내 비록 비통한 마음으로 조국을 떠나가지만 강도 일제를 쳐부시고 기어이 너의 품에 돌아오리라는 맹세를 마음속으로 엄숙히 다지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언제부터인가 이 강을 건느는 사람들속에서 불리워오는《압록강의 노래》를 조용히 부르시며 두터운 얼음우로 걸음을 옮기시여 2월 3일 8도구에 도착하시였다.

《압록강의 노래》는 다음과 같다.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은

이 내 몸이 압록강을 건넌 날일세

년년이 이날은 돌아오리니

내 목적을 이루고서야 돌아가리라

 

압록강의 푸른 물아 조국산천아

고향땅에 돌아갈 날 과연 언젤가

죽어도 잊지 못할 소원이 있어

내 나라를 찾고서야 돌아가리라

 

어버이주석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나는 그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언제 다시 이 땅을 밟을수 있을가, 내가 자라나고 선조의 무덤이 있는 이 땅에 다시 돌아올 날은 과연 언제일가 하고 생각하시였다고, 이런 생각을 하니 어린 마음에도 비감을 금할수 없었다고, 그때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눈앞에 그려보며 조선이 독립하지 않으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비장한 맹세를 다지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 조선혁명의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걸으신 《광복의 천리길》은 조국해방을 위한 투쟁에로 잇닿은 영광스러운 혁명의 길이였다.

《광복의 천리길》로정에 있는 전천과 포평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동상이 모셔져있으며 전천에 《광복의 천리길》학생소년궁전과 혁명사적기념비가 세워져있다. 그리고 천리길로정의 많은 곳들에 기념비들이 있다.

 

 

 



Facebook Twitter LinkedIn Google Reddit Pinterest KakaoTalk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