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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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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8(2019)년 1월 9일 [련재]

 

6. 사랑의 화신

 

선 택

 

조선지도를 펼치고 북부국경일대를 살펴보느라면 김정숙녀사의 이름으로 명명된 군이 있다.

이전에는 신파라고 부르던 곳이였는데 녀사의 투쟁업적과 발자취가 뜨겁게 어려있는 곳이여서 온 나라 인민들의 념원에 따라 이렇게 고쳐졌다고 한다.

압록강을 끼고 김정숙군과 마주한 중국국경지대의 13도구부락에서 30리가량 떨어진 곳의 도천리라는 비교적 큰 산간마을에도 녀사의 불멸의 혁명업적이 뜨겁게 어려있다.

그 마을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에 요방자라는 마을이 또 있는데 나는 그곳에서 벌어진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녀사께서 어려운 지하공작임무를 수행하시려 도천리에 파견되시였을 때의 일이다.

요방자에는 당시 정안군려단 지휘부가 있었다.

정안군이란 만주국정부의 군대로서 지휘관의 대부분이 일제침략군의 현역장교들로 구성된 악질적인 반동부대였다.

어느날 이자들은 녀사께서 거처하고계시던 집에서 원군물자(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내는 물자)를 발견하자 공산당이라고 으르렁거리며 녀사를 체포하였다.

녀사를 즉시 호송해간 곳이 바로 요방자라는 마을이다.

적들은 녀사를 로인내외가 사는 한 농가에 감금한채 매일과 같이 악착한 고문을 들이대였다.

아직은 이렇다할 확실한 증거를 쥐지 못한 적들이였지만 일단 조선인민혁명군 공작원을 체포하였다고 떠들어댄 이상 그냥 놓아줄수는 없었다.

조선말을 잘 아는 한놈은 녀사에게 조직선만 대면 인차 석방되도록 노력해주겠다고 회유하다가 그것이 통하지 않게 되자 이제 얼마후면 틀림없이 사형당할것이라고 위협까지 하였다.

가만있으면 희생을 피할수 없다는것이 명백해진 그때 자신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후날 녀사께서는 이렇게 터놓으시였다.

《사실 보초 하나쯤 제끼고 내뛰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렇지만 그렇게는 못하겠더군요. 제가 갇혀있던 집의 늙은 내외의 가긍한 정상을 생각하면 어떻게 보초를 제끼고 달아날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들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여기서 도망가기는 쉽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빠져나가면 이집 늙은이들은 어떻게 되고 나를 좋은 녀자라고 보증해나선 정구장은 어떻게 되고 도천리의 지하조직과 인민들은 또 얼마나 큰 피해와 시달림을 당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니 내 한몸이 희생되더라도 조직을 지켜내고 인민을 지켜내야 하겠다는 각오가 생기였습니다. 저는 그날 밤 편안한 마음으로 그 집 웃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일신을 바치려고 마음먹으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두려운것도 없고 주저할것도 없었습니다.》

탈출하여 생명을 구원할수 있는 길과 가만 앉아서 희생을 당하는 길.

그때 녀사께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범인간이라면 누구나 선택하고싶어하는 삶의 길을 포기하시였다.

그대신 어느 누구라도 주저하게 되고 외면하고싶어하는 희생, 죽음의 길을 선택하신것이다.

더듬어보면 녀사께서는 이미전에 그런 경우를 수없이 겪어오시였다.

…1932년 겨울 어느날 장재촌유격구에 적《토벌대》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모두가 황급히 산으로 피신하였는데 별안간 한 녀인이 가슴을 쥐여뜯으며 통곡을 하고있었다. 사연인즉 집에서 큰 아이들은 데리고 왔는데 너무 급한김에 덤벼치다나니 잠자는 아이를 업는다는것이 그만 베개를 업고 달려왔다는것이였다. 마을에는 이미 적들이 들어선 뒤여서 사람들은 다시 내려가겠다고 몸부림치는 그 녀인을 붙잡으며 누구나 땅이 꺼지게 한숨만 내쉬였다.

바로 이런 때에 그곳에 달려오시여 사연을 알게 되신 녀사께서는 곧 아동단원 몇명에게 작탄과 나팔을 리용하여 적들을 반대방향으로 유인할데 대한 과업을 주신 다음 주저없이 마을로 되돌아 달리시였다.

얼마후 불붙는 빈집에서 울고있는 어린애를 업고 결사적으로 달려오신 녀사앞에 어린애의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어푸러졌다.…

1933년 봄, 장재촌유격구에서는 《민생단》련루자로 군중앞에 끌려나온 어린 소녀에 대한 《심판》이 벌어졌다.

좌경분자들은 그에게 《죄》를 인정시키느라고 악청을 돋구었고 겁을 먹은채 절망에 빠진 그 소녀는 항변 한마디 못했다.

그때 한 처녀가 사람들앞으로 선듯 나섰다.

《선옥이! 안한짓을 했다고 하면 안되요.》

모두는 가슴이 섬찍해졌다.

《민생단》감투를 쓴 사람과 마주서기만 해도 같은 취급을 당하고 하루밤만 자고나면 어제까지 함께 싸우고 생활한 사람들이 《민생단》이 되여 무참히 목숨을 잃군 하던 때였다.

너무도 살벌한 분위기에 공포를 느낀 일부 사람들이 혁명을 포기하고 적구나 무인지경으로 도주하기도 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침묵을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택하고 살아가던 때였다.

그런데 이 어린 처녀는 무슨 변을 당하려고…

하지만 처녀는 심판대에 끌려나온 소녀가 《민생단》이 될수 없다는 부정할수 없는 론거를 내대며 군중을 향해 이렇게 웨쳤다.

《여러분!… 원쑤놈들의 잔꾀에 넘어가지 말고 눈을 똑똑히 뜨고 혁명동지와 원쑤를 갈라봐야 합니다.》

소녀의 운명을 자기 한몸을 내대며 희생적으로 구원한 그 처녀는 당년 16세의 김정숙녀사이시였다.

하다면 이런 녀사께서 정말 요방자의 그밤, 시시각각으로 죽음이 다가오는 그밤을 자신께서 말씀하신것처럼 정말로 편히 잠에 드셨으랴. 조국의 운명이시고 자신의 전부이신 장군님의 곁으로 다시 돌아갈 그날을 얼마나 고대하시던 녀사이신가.

장군님을 받들어 마음껏 싸우고싶으셨을 그 열망, 기어이 나라를 찾고 조국으로 돌아가 이국땅에 묻힌 부모형제들의 맺히고맺힌 한을 풀어주고싶으셨을 간절한 소원, 장군님을 모시고 해방된 조국에서 천만년 길이 살고싶으셨을 찬란한 앞날에 대한 꿈…

그 모든것을 뒤에 남기고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하신 녀사의 그 마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주석님께서는 그때를 회고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김정숙은 인간을 불처럼 사랑하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남을 위한 희생을 조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불처럼 사랑하는 녀사!

나는 저도 모르게 이렇게 곱씹었다.

불은 뜨거움의 대명사이다. 또한 자기 희생의 상징이다. 자기를 태우면서 그 빛과 열기로 남을 살리는것이 불이 아닌가.

불처럼 뜨겁고 불처럼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나락에서 구원해주신 녀사.

《사랑은 주고 또 주어도 가슴에 남아있고…》

어느 한 시인은 끝을 모르는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녀사의 가슴속에는 아무리 퍼내도 마를줄 모르는 사랑의 샘이 있었다.

그 진할줄 모르는 사랑을 아낌없이 연소시키면서 녀사께서는 기꺼이 남을 살리는 《불》이 되시였다고 나는 확언하고싶다.

이런 사실들이 녀사에게 있어서 천이랴 만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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