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1-10-16

주체110(2021)년 10월 16일 《상식》

 

물동이

 

지난날 우리 녀성들의 가정일과 많이 결부되여있는 물동이는 물을 담아나르는 용기로서 모양이 둥글고 배가 부르며 아구리가 넓고 량옆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고려시기나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기록을 보면 동이를 동해, 분, 수분, 유분이라고도 하였으며 지방에 따라서는 동애소래, 닫개동이, 물히박 등으로 불리웠다.

동이에는 토기, 도기로 만든것이 많았고 사기나 놋, 구리동이는 드물었다.

동이의 형태는 다양하였는데 둥근 통나무나 대나무의 토막을 세워놓은 모양의것과 단지와 같이 아구리를 좁힌 형태, 옹배기 혹은 소래의 형태를 갖추고있는것 등 여러가지였다.

같은 재료로 만든 동이도 지방에 따라 형태가 각이하였다. 서북지방의 물동이는 아구리가 비교적 넓고 목이 밭으며 어깨와 배가 별로 구별이 없이 둥글게 내려오며 배가 부르고 밑이 두리뭉실하다. 동북지방의 물동이는 목이 가늘고 길며 어깨선이 벌어졌다가 밑으로 내려가면서 갑자기 좁아지는데 형태상 세련되고 날씬하게 보인다. 중부지방의 물동이는 동북지방의 물동이와 서북지방의 물동이를 절충한 형태인데 강원도지방의 물동이는 동북지방의것에 더 가깝고 황해도지방의 물동이는 서북지방의것에 더 가깝다.

물동이에는 이밖에 어린 처녀들이 쓰는 반동이, 방구리가 있었다.

동이는 형태상 액체를 담아 들어올리거나 나르는데 편리하게 반드시 량쪽에 손잡이가 달려있다. 그러나 물을 담은 다음에는 머리에 똬리를 올려놓고 그우에 이고다니였다. 이와 관련하여 남부지방의 물동이는 키가 작고 아구리가 넓기때문에 반드시 바가지를 엎어띄워 이고다닐 때 물흐르는것을 막았는데 이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되였다.

동이를 머리우에 이고다니는 풍습이 《고려사》에 나오는것으로 보아 그 유래가 오래다는것을 알수 있다.

지난날 농촌마을의 정가로운 우물길을 따라 물동이를 이고다니는 녀성들의 모습은 우리 나라에서만 볼수 있는 하나의 고유한 풍경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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