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날자 : 2022-06-30

주체111(2022)년 6월 30일 《기사》

 

천추만대를 두고 결산해야 할 미제의 살륙만행(3)

맥아더의 살인명령

 

1950년 9월 16일 미제는 인천에 상륙하면서 맥아더의 살인명령에 따라 남조선 전지역에서 가혹하고 잔인한 전대미문의 대학살을 감행하였다.

미제는 인천과 서울 등지에서 남녀로소를 불문하고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모조리 쏘아죽였다.

이날 하루동안에 인천에서 사살된 인민들의 수는 1 300여명이나 된다.

9월 25일에는 미제의 서울에 대한 대량적인 폭격만행으로 5만여명의 시민들이 학살되였다.

9월 28일부터 3일동안에 7만 5 000여명을 체포하거나 무참히 죽이였다.

서울에서의 미제의 학살만행은 잔악하였다.

10월 9일에만도 미제는 공덕동주민들을 끌어가 손, 발, 혀, 귀, 코를 잘라내고 두눈을 뽑아내여 죽였으며 녀성들은 젖가슴을 도려내여 학살하였다.

9월말 전라북도에서 10만명이상의 피난민들을 살해하였고 경기도 고양군에서는 1 000여명을 금정굴의 50m 수직갱속에 떨구어 학살하였다.

11월과 12월 충청북도 제천군, 청주시와 충청남도 대덕군, 전라북도 군산시 등지에서 수백명, 전라북도 임실군 덕치면, 청웅면에서 805명,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500여명을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다.

미제는 잔악한 방법으로 조선녀성들을 희롱하고 살해하였다.

서울에서만도 870명이상의 녀성들을 강간한 다음 학살하였는데 그 악랄성은 세계 그 어느 전쟁사에서도 찾아 볼수 없는것들이였다.

미제침략자들은 패주직전 《이감》이라는 구실밑에 서대문형무소에서 1만 2 000명, 륙군형무소에서 1 000여명, 서울의 기타 형무소들에서 1만 7 000여명을 남으로 끌고 가다가 도중에서 1만여명을 갖은 방법을 다하여 학살하였다.

1951년 1월 4일 미제는 경기도 창영인민학교 정문옆에 수십명의 인민들을 4렬로 앉히고 기관총을 란사하여 학살하였다.

당시의 광경에 대해 한 주민은 《시체더미는 주민들이 그것을 피하려고 다른 길로 돌아다닐만큼 무서운 광경이였다.》고 울분을 터치였다.

1월 창영동에 있는 장유공장건물내에 있던 동인천경찰서창고에 127명을 가두고 불태워 죽였다.

미제는 비행기를 동원하여 대량적으로 살륙하였다.

1월 20일 괴개굴에 피해있는 300여명을 향해 포탄과 기총사격을 가하여 모두 학살하였고 2월 3일에도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서 줄폭탄을 퍼부어 수많은 주민들을 살해하였다.

2월 10일과 11일 지리산유격대《토벌》에 나선 미제침략자들은 거창군 신원면에서 719명의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구월산유격대《토벌》에서는 무려 2 400여명을 죽였다.

미군만행국제진상조사단 단장 램지 클라크(전 미사법장관)는 이에 대하여 미군의 인천상륙때부터 더욱 피비린내나는 살륙전이 벌어졌다고 증언하였다.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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