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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게시날자 : 2017-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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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106(2017)년 5월 18일 [기사]

 

광주인민봉기 오늘에 본다

 

남조선인민투쟁사에 빛나는 장을 아로새긴 영웅적광주인민봉기 37돐이 되였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서슴없이 바친 광주항쟁용사들의 불굴의 투쟁정신과 위훈을 다시금 돌이켜보고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투쟁이 식민지파쑈통치의 원흉인 미제를 반대하는 투쟁으로 심화발전되는것은 필연적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광주인민봉기는 미제와 군사파쑈도당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쌓이고쌓인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였다.

1979년 《유신》독재가 종말을 고한 후 남조선에서는 새 정치, 새 생활에 대한 인민들의 지향과 열망이 급격히 고조되였다.

하지만 《12. 12숙군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한 군부깡패들은 1980년 봄 미제의 지령에 따라 높아가는 인민들의 민주화요구에 5. 17군사파쑈폭거로 대답해나섰다. 그것은 남조선에서 새로운 군부독재의 시작을 알리는 일대 파쑈광란이였으며 또 하나의 《정권》강탈음모였다.

군부세력에 의해 반년나마 지속된 《계엄령》에 련이은 《비상계엄령》의 선포와 파쑈독재통치의 강화는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항거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5월 18일 광주인민봉기의 거세찬 불길로 타올랐다. 광주의 청년학생들과 각계층 인민들은 더이상 정치적무권리와 억압을 강요당할수 없기에 군사파쑈통치를 반대하여 결연히 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다.

 

 

 

 

 

 

봉기참가자들은 도시가 군사파쑈도당의 폭압무력에 겹겹이 포위되고 완전한 봉쇄와 무차별적인 폭압공세가 끊임없이 가해지는 속에서도 도시를 10일동안이나 사수하는 영웅적위훈을 세웠다. 광주에서 타오른 불길은 전라남도내 17개 시, 군을 휩쓸고 전라북도 전주에까지 파급되였으며 항쟁참가자는 100여만명에 달하였다.

바빠맞은 미국은《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역도를 두목으로 하는 군사깡패들을 봉기자들과 시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대살륙전에로 부추겼다.

전두환역도는 광주의 봉기자들에 대한 살륙작전에 악명높은 괴뢰공수특전대를 비롯하여 제3공수려단, 제7공수려단, 괴뢰군 제20사단, 제31예비사단 등 수만명의 괴뢰군병력, 수백대의 땅크와 장갑차, 수백문의 대포와 미싸일을 동원시켰다.

 

 

 

당시 전두환역도는 악질특전대원들을 이틀이나 굶긴 뒤 환각제를 탄 술을 먹여 살륙작전에로 내몰면서 《광주시민 70%를 죽여도 좋다.》, 《젊은 놈들은 폭도이다. 모조리 죽여라.》, 《광주시는 특전대원들의것이다. 녀자도 재물도 무엇이든지 차지하고 무슨 일이든지 선택하라.》는 《특별명령》까지 내렸다.

이리하여 광주는 사상 류례없는 인간도살장으로 변하고말았다. 살인마들은 시위군중들이 모인 곳에 기관총을 마구 쏘아대고 지상과 공중에서 총포탄을 퍼부으며 거리와 마을, 사람 할것없이 모조리 짓이기고 불태우며 도시를 초토화하였다.

항쟁참가자들을 집단적으로 생매장하고 늙은이건 어린이건, 남자이건 녀자이건, 지어는 임신부까지도 닥치는대로 쏘아죽이고 때려죽이고 찔러죽인 그 무차별적인 대학살만행은 실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야수들은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한 녀대학생의 젖가슴을 도려냈고 젖먹이어린애를 《폭도의 종자》라고 하며 총검으로 찔러죽이였으며 그것을 보고 항거하는 70대 로인을 하수구에 처박아 죽이고 항쟁자들에게 음료수와 빵을 무상으로 공급해준 한 가게방주인과 그 아들을 《폭도를 도와준 너희들도 폭도다.》라고 고아대면서 군용차의 뒤에 매달아 끌고다니다가 죽이였으며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칼탕치는것과 같은 짐승도 낯을 붉힐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권력유지에 방해가 된다면 그가 설사 자기 부모형제일지라도 서슴없이 죽이는 야만들, 인간백정들만이 감행할수 있는 도살만행에 의하여 광주시에서는 단 며칠동안에 무려 5 000여명이 학살되고 1만 4 000여명이 부상당하였으며 광주는 말그대로 《피의 목욕탕》, 《망령만이 배회하는 죽음의 도시》, 《시체의 퇴적장》으로 되여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몸서리쳤으면 어느 한 외국의 TV방송은 광주학살만행에 대한 보도를 하면서 심장이 약한 사람들은 보지 말라고 미리 경고까지 하였다.

야수들의 치떨리는 만행을 직접 체험한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 회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계엄군이 환자들이 치료를 받던 병원을 향해 마구 총질을 하고 강압적인 수색을 벌린것은 전두환 등 신군부의 만행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또다시 만천하에 드러낸것》이라고 하였다.

광주인민봉기는 미국의 간섭과 남조선군사파쑈도당의 전례없는 야수적탄압책동으로 말미암아 비록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투쟁과 동방근대력사에 자랑스러운 한페지를 기록하였다.

광주인민봉기는 자주적인 삶을 지향하며 하나로 뭉쳐 싸우는 인민대중의 힘은 압제자들의 총칼보다 강하며 인민대중이 죽음을 각오하고 단합하여 투쟁한다면 아무리 포악한 원쑤도 타승할수 있다는 진리를 뚜렷이 확증해주었다.

그때로부터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광주의 봉기자들이 발휘하였던 그 정신, 그 기백은 오늘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남조선인민들의 정의의 애국투쟁을 적극 추동하고있다.

 

최 진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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